숭례문 복원공사가 10일 시작됐다. 화재가 발생한 지 2년 만이다. 복원공사의 핵심은 불에 탄 2층짜리 목조 누각을 되살리는 것이다. 그러나 이에 못지않게 중요한 것이 있다. 바로 숭례문 바로 옆의 서울성곽(한양도성)을 복원하는 것이다.
숭례문 주변의 서울성곽은 일제에 의해 파괴됐다. 일제는 1907년 성벽처리위원회라는 기구를 만들어 서울성곽 철거 계획을 세우기 시작했다. 당시 일제의 통감부는 이렇게 주장했다.
“선인(鮮人) 동화를 위해 간과할 수 없는 것이 있다. 한두 가지 예를 들면 산성(山城)이란 것이 조선 도처에 있고 고명찰(古名刹), 가람(伽藍) 등은 거의 배일(排日)이란 역사적 재료를 가지고 있다. 몇 년에 왜적을 격퇴했다든지 하는 등의 글귀가 변기에조차 써 있다. 점차적으로 제거해야 선인 동화를 이룰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한다.”
일제는 1907년 일본 왕자가 서울을 방문했을 때, 통행에 방해가 된다는 이유로 숭례문 바로 옆의 성곽 일부를 헐어버리는 만행을 저질렀다. “일본의 황태자가 조선의 도성 정문으로 들어갈 수 없다. 성벽을 넘어가겠다”는 것이었다. 이듬해엔 흥인지문 주변의 성곽도 헐어냈다.
숭례문이 성곽을 잃고 반쪽이 된 지 100년이 넘었다. 이번 복원은 파괴된 성곽을 복원하는 것이기에 그 의미가 각별하다. 숭례문은 성곽과 떼어서 생각할 수 없는 문화재다. 목조 누각 못지않게 성곽 복원이 중요한 이유다. 숭례문의 존재는 성곽과 함께 있을 때 진정한 의미가 있다. 이번 복원을 통해 숭례문이 도성의 남쪽 정문이었다는 사실을 부각시켜야 한다.
현재 문화재청의 계획에 따르면 동쪽 남산 자락으로는 88m, 서쪽 대한상공회의소 쪽으로는 16m를 복원하게 된다. 그러나 서쪽이 미약하다. 도로에 막혀 16m만 복원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여기에 그치지 말고 길 건너 대한상공회의소까지 성곽을 연장해야 한다. 대한상공회의소와 숭례문 사이의 도로 상공으로 성곽 윗부분의 여장(女墻·적을 공격하기 위해 성벽 위에 설치하는 낮은 담)이 지나가도록 해야 한다. 차량은 그 밑으로 지나가면 된다. 이 같은 복원은 서울의 역사와 경관을 살리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
“교통이 문제다” “임시방편에 불과하다”는 의견도 있다. 관계 기관들의 합의도 필요하다. 그 과정에서 논란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발상을 바꿔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인 수원 화성에서 이미 이 같은 실험은 성공한 바 있다. 2000년대 들어 장안문 옆, 창룡문 옆 등 5군데 도로의 상공으로 성벽 상부를 연장 복원해 놓았다. 역시 일제가 성벽을 뜯어내고 도로를 낸 곳이다.
수원 화성박물관의 김준혁 학예팀장은 이렇게 말한다. “처음에 우려는 있었지만 막상 공사가 끝나고 나니 그런 우려는 말끔히 사라졌습니다. 장안문, 창룡문이 화성의 성문이었다는 의미가 더 부각되면서 수원의 명물로 자리 잡았습니다. 관광객의 발길도 이어져 수원 관광에도 도움이 됩니다.”
숭례문 주변 성곽을 이렇게 복원할 경우, 거기엔 이 시대의 문화가 담기게 된다. 옛날 것과 똑같게 되살리는 복원도 중요하지만 그 시대의 정신과 고뇌의 흔적을 담는 복원도 중요하다. 숭례문 주변 상공으로 연장 복원되는 성곽, 그건 100년 뒤 또 하나의 멋진 문화재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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