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황규인]비리 막을 ‘부끄러운 마음’ 구멍 난 서울교육청

  • 동아닷컴
  • 입력 2010년 2월 19일 03시 00분


“빚도 신고해야 하는지 몰라서 ‘실수로’ 누락했다”고 했다. 기자가 묻지도 않았는데 “일부에서 공정택 전 교육감 돈이라는 말을 흘리고 다니는데 사실과 다르다”는 해명까지 덧붙였다. 공직자 재산 신고 때 14억6000여만 원을 빠뜨린 서울시교육청 K 전 국장이 지난해 말 기자와 통화했을 때 이야기다. 서울 강남의 모 고교 교장으로 자리를 옮긴 K 전 국장은 17일 자기 집에서 체포돼 검찰의 조사를 받았다.

지난해 11월 30일 동아일보가 서울시교육청의 인사 비리 문제를 지적하자 한 시교육청 고위 관계자가 기자에게 전화를 걸어왔다. 그는 “인사 비리가 단 한 건이라도 나오면 내 손에 장을 지질 것”이라고 했다. 하지만 서울시교육청의 인사 비리를 수사 중인 검찰은 이 관계자가 비리에 연루됐을 확률이 높은 것으로 보고 수사를 진행하고 있다. 이 관계자뿐 아니라 소환 예정자에 오른 고위 관계자도 여럿이다.

걱정스러운 것은 이런 부패 불감증을 개개인의 자질 문제로만 치부할 수 없다는 사실이다. 시교육청 고위 관계자는 “본청 국장, 교육장들이 모여 대책을 논의하는 자리에서도 부끄러운 기색을 보이는 사람을 찾아보기 힘들었다”고 전했다.

일선 교육 현장에서는 ‘언젠가 터질 것이 이제야 터졌다’는 반응이다. 기자가 e메일이나 문자메시지 등을 통해 받은 제보에는 시교육청 고위 간부들의 이름이 여럿 등장한다. “A 교육장이 2007년 교육감 선거를 앞두고 교장들을 불러 돈을 걷었다. 나도 줬다” “(18일 구속 영장이 발부된) B 장학관이 돈을 챙겨 D 인사에게 전달한 걸로 본다”는 제보들이다. “이들은 서울 교육의 이완용이다. 연루자들을 꼭 구속시켜 달라”는 당부도 있었다.

그런데 시교육청 부조리 신고센터에 접수된 신고 중에는 이런 내용이 별로 없다고 한다. 기자에게는 스스럼없이 털어놓을 수 있지만 공식 채널을 이용했다가는 스스로에게 피해가 돌아갈 것을 우려했기 때문일 것이다. 비리 연루자로 지목되고 있는 한 간부는 사석에서 “아랫선에서 알아서 입을 닫을 것”이라고 장담했다고 한다.

맹자는 사람의 도리를 언급하면서 “수오지심(羞惡之心)이 없으면 사람이 아니다”라고 했다. 수오지심은 자기 잘못을 부끄러워하는 마음이기도 하지만 남의 옳지 못함을 미워하는 마음이기도 하다. 비리에 ‘끌려 다닌’ 이들에게 수오지심이 더욱 필요한 이유다. 남의 잘못을 아는 것이 있다면 입을 열고 자기가 옳지 못했다면 인정해야 한다. 법은 도덕의 최소한이라고 했다. 내부고발자 보호도 필요하지만 스스로 용기를 내는 모습부터 확인하고 싶다.

황규인 교육복지부 kin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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