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에서/장환수]파란 밴쿠버, 붉은 남아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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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0년 2월 19일 03시 00분


운동선수가 입은 옷 때문에 논란이 된 경우가 최근 두 번 있었다. 지난달 테니스 호주오픈에선 비너스 윌리엄스가 노 팬티 논란에 휩싸였다. 일부 인터넷 언론에선 ‘비너스가 속옷을 입지 않았다’는 낚시 제목까지 달았다. 동영상은 ‘19금(禁)’ 인기 메뉴가 됐다. 사실 비너스는 갈색 속옷을 입었다. ‘흑진주’로 불리는 비너스의 갈색 속옷은 언뜻 보면 피부색으로 보인다. 이를 두고 한쪽에선 최근 기량이 하향곡선인 비너스가 노이즈 마케팅(구설수에 휘말리게 함으로써 소비자의 이목을 집중시키는 기법)을 한 게 아니냐고 수군거렸다.

밴쿠버 겨울올림픽 스피드스케이팅 남자 500m에서 모태범이 금메달을 딴 16일에는 많은 시청자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어휴, 망측해라. 저 일본 선수들은 속옷이 훤히 비치는 유니폼을 입고 나왔네.” 일본 선수들의 유니폼은 황금빛 색깔에 뱀 형상이 새겨져 있는 것도 특이했지만 팬티 라인이 적나라하게 드러나 보였다. 그러나 이는 팬티 라인이 아니라 가랑이 부분에 소재를 달리한 것이 색깔 차이로 두드러져 보인 것. 유니폼을 제작한 미즈노사는 “개발에만 3년 반이 걸렸으며 수십억 원의 예산이 투입됐다. 덕분에 환기가 잘되고 공기 저항을 5%가량 줄이게 됐다”고 설명했다.

이처럼 선수들의 옷에는 나름대로 이유가 숨어 있다. 그러고 보면 밴쿠버에서 한국 선수단이 입은 유니폼은 종목마다 디자인에 차이가 있긴 하지만 파란색이라는 공통점이 있다. 김연아도 올 시즌 유니폼 색상을 검정(쇼트프로그램)과 파랑(프리프로그램)으로 정했다.

파랑은 빨강과 상극이다. 하늘과 바다를 닮은 색으로 평화, 평온, 조화, 충성을 상징한다. 이는 구성원끼리 서로 격려하고 위안을 받는 데 도움이 된다고 색채 심리학에서 얘기한다. 빨강처럼 상대를 위협하는 색이 아니다. 우리나라의 겨울 스포츠 선수들은 오래전부터 파란 유니폼을 입었다.

여름 스포츠로 시각을 옮겨 보면 ‘붉은 악마’ 축구 대표팀의 상징색은 붉은색이다. 핸드볼과 하키도 2008년 베이징 올림픽에서 붉은 유니폼을 입었다. 태양을 닮은 붉은색은 피, 에너지, 생명, 힘, 권력을 상징한다. 모든 색 중 가장 강렬해서 멀리서도 잘 보인다. 이 때문인지 2004년 아테네 여름올림픽 때 복싱, 레슬링 등 격투기 종목에서 붉은 유니폼을 입은 선수의 승률은 55%였다는 조사도 있다.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에서도 빅4 가운데 첼시(파랑)를 뺀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아스널, 리버풀의 유니폼은 붉은색이다.

반면 야구 대표팀은 ‘푸른 도깨비’란 별칭을 얻었다. 야구 대표팀은 지난해 3월 월드베이스볼클래식 한일전에서 홈팀 색깔인 하얀 유니폼을 입고는 콜드게임패 했지만 이틀 뒤 파란 유니폼을 입고는 완봉승을 거뒀다. 하얀 유니폼을 입은 결승전에서는 분루를 삼켰다.

그러고 보니 파란색과 붉은색 유니폼의 차이가 보이는 것 같기도 하다. 축구와 야구는 같은 구기종목이지만 상대와 부딪침이 있느냐, 없느냐의 차이가 있다. 겨울 스포츠는 대부분 기록경기나 채점경기다. 격렬하고 빠르긴 해도 아이스하키를 빼면 대체로 자신과의 싸움을 한다.

올해는 2월 밴쿠버 겨울올림픽과 6월 남아공 월드컵, 11월 광저우 여름아시아경기 등 굵직한 대회가 연달아 열리는 스포츠의 해다. 모쪼록 파란 물결, 붉은 물결이 넘실거리는 한 해가 됐으면 하는 바람이다.

장환수 스포츠레저부장 zangpab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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