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 칼럼/김창원]도요타와 세계화의 함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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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0년 2월 22일 03시 00분


도요타자동차의 대량 리콜사태가 심상치 않은 조짐을 보이던 이달 초. 평소 알고 지내던 일본의 모 경제지 고참기자 H에게 전화를 걸었다. 도요타 리콜사태를 일본 제조업의 위기로 몰고 가는 미국 등 해외 언론과 달리 일본 언론의 보도는 너무 차분해 좀처럼 사태의 여파를 가늠키 어려웠다. 일본 베테랑 기자들의 생각이 궁금하기도 했다.

H 기자는 “도요타의 대량 리콜은 미국 납품업체에서 비롯된 것으로 도요타의 전반적인 문제로 확대해석하는 것은 침소봉대”라고 단언했다. 해외 언론 보도에 대한 불만도 적지 않은 듯했다. “자칫 부끄러운 기사가 될 수 있으니 주의하는 게 좋겠다”는 충고도 잊지 않았다.

일주일도 채 안돼 일본 내에서 만든 신형 프리우스 등 하이브리드 차마저 줄줄이 리콜에 들어가면서 해외공장 문제라던 H 기자의 도요타 변호는 설득력을 잃었다.

하지만 금방이라도 도요타가 무너질 것처럼 보도하는 도요타 위기론에도 선뜻 동의하기 어렵다. 도요타가 어떤 회사인가. 문제를 스스로 찾아 개선하는 가이젠(改善·개선), 필요한 곳에 필요한 것을 필요한 만큼 제공하는 간반(看板·간판) 방식 등 독특한 경영기법으로 세계 모든 제조업체의 모범이 된 회사다. 지난해 가을 미 포드자동차가 운전제어장치 결함으로 800만 대의 리콜을 실시했을 당시 미 언론 보도와 비교하면 ‘일본 때리기’라는 일부 지적에 수긍이 간다.

하지만 1000만 대가 넘는, 사상 유례가 없는 도요타의 대량 리콜사태를 재수 없는 오비이락(烏飛梨落)으로 넘기기에는 아무래도 찜찜하다. 도요타의 문제는 어디에서 비롯된 것일까.

도요타는 세계 그 어느 회사보다 세계화 논리를 충실히 따른 기업이다. 생산비용이 싼 지역을 찾아 ‘콜센터’를 짓듯이 공장을 늘렸고 글로벌 아웃소싱으로 싸게 조달한 부품을 다른 차종에도 함께 쓰는 부품공용화와 표준설계로 효율을 극대화했다. 덕분에 도요타의 해외생산량은 2000년 들어 8년 동안 2배로 늘었다. 2007년에는 해외생산이 자국내 생산을 앞질렀고 한 해 2조 엔이 넘는 막대한 영업이익을 올리는 회사로 거듭났다.

그러나 도요타는 이처럼 덩치를 키우는 동안 도요타 본연의 DNA를 상실했다. 늘어난 해외공장의 품질관리와 해외조달 부품을 꼼꼼히 체크하는 경영시스템이 뒤따르지 못했다. 도요타의 국내공장에는 생산 과정에서 불량이 발견되거나 비정상적인 작업이 발생하면 누구라도 언제든지 작업라인을 세울 수 있는 ‘안돈(行燈·경고등) 시스템’이 적용된다. 불량품 생산 가능성을 현장에서 원천봉쇄해버리는 도요타의 대표적 품질관리 시스템이다. 그러나 도요타의 안돈시스템은 해외 공장에는 적용되지 못했다. 생산과 부품 조달이 세계화될수록 고품질을 담보하기 위한 감시 장치가 필요하지만 도요타는 효율과 양적 성장에 급급한 나머지 ‘세계화의 함정’에 빠진 것이다. ‘더 싸게 더 빨리’라는 효율성을 강조하는 세계화는 이처럼 품질관리의 위험을 숙명적으로 안고 있는지 모른다.

도요다 아키오 사장은 최근 “필요 이상의 것을 만들지 않는다는 도요타 생산원칙을 스스로 깨버렸다”고 말했다. 저금리의 특별대출이 실수요 이상의 판매로 이어졌고 늘어난 판매량을 달성하기 위해 품질관리에 소홀했다는 반성이었다.

도요타 리콜사태는 결코 한 기업에 국한된 문제가 아니다. 세계화를 좇고 있는 기업이라면 이러한 품질관리 문제는 어디에서든 일어날 수 있는 위험 요인이다. 대량 리콜사태가 우리 기업에 먼저 일어나지 않아 가슴을 쓸어내리는 이유다.

김창원 도쿄 특파원 changki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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