밴쿠버의 낭보에 모처럼 온 국민이 환호했다. ‘이정수 모태범 이상화 이승훈 이호석….’ 아니 금 은 동메달만 중요한 건 아니다. ‘아름다운 뒷모습’을 보여준 이규혁은 어떤가. 노장의 4전5기 투혼은 젊은 빙상선수들을 단련시킨 용광로였다. ‘피겨 여왕’ 김연아가 눈부신 자태로 곧 무대에 선다. 여왕이 따낼 금메달엔 각별한 의미가 있다. 그랑프리파이널 세계선수권 4대륙선수권에 이어 올림픽까지 제패하면 ‘불멸의 금자탑’을 쌓게 된다.
대표선수 뽑듯 선발과정 투명해야
스포츠에선 승자와 패자가 분명하다. 불꽃 튀는 레이스는 손에 땀을 쥐게 한다. 드물게 스케이트 날 차이로도 승부가 갈린다. 패자에겐 잔인하다. 그러나 그것도 실력이다. 스포츠에 열광하는 것은 군더더기가 없는 이런 명징함 때문이리라. 스포츠 영웅들의 땀과 눈물, 부상과 좌절, 재기의 몸부림, 위대한 도전, 승리의 환호에 팬들은 울고 웃는다. 겨울올림픽을 비롯한 모든 스포츠는 어쩌면 인생의 축소판일지 모른다. 이것이 스포츠의 매력이다.
6·2지방선거가 98일 앞으로 다가왔다. 얼핏 보면 선거도 스포츠와 닮은 점이 많다. 무엇보다 승패가 분명하다. 막상막하의 두 후보가 앞서거니 뒤서거니 각축하면 스포츠 중계를 보는 것 같다. 새벽에 월드컵 중계 보듯 개표를 밤새워 지켜본 경험이 누구나 있을 것이다. 스포츠에서 그렇듯 선거에서도 졌지만 이긴 것 같은 ‘아름다운 패배’도 드물게 있다.
그러나 둘 사이엔 넘기 힘든 차이가 있다. 무엇보다 스포츠는 구차하거나 음습하지 않다. 막후에서의 흥정이나 뒷거래가 없다. 정정당당하게 겨뤄 이긴 사람이 대표로 뽑힌다. 연습과 훈련을 통해 쌓은 실력이 중요하다. 선거에 출마할 후보를 뽑는 것이 공천이다. 각 당의 공천이 공명정대한가. 회의적이다. 대선과 총선에 비해 특히 역대 지방선거 후보 중에는 ‘어떻게 저런 사람을…’이라고 혹평할 수밖에 없는 엉터리도 많다.
올림픽 명승부를 보면 사람들은 감동을 받는다. 그러나 지방선거 결과에 감동했다는 사람은 없다. 먼저 선발 과정이 공천이란 말이 무색할 만큼 투명하지 않다. 실력자의 ‘사천(私薦)’인 경우도 많다. 레이스를 펼칠 때도 반칙과 흑색선전이 난무한다. 이렇게 혼탁하다 보니 민선 4기 기초단체장 230명 중 40%가 넘는 95명이 기소돼 이 중 37명이 중도 퇴진했다. 선거 때 혹은 임기 도중 검은돈을 주고받고 잇속을 챙긴 사람이 대부분이다. 썩는 냄새가 풀풀 난다. 어떤 단체장은 인사비리를 저지르고도 청사는 호화판으로 지었다가 개선 명령을 받게 됐다. 이래저래 아까운 세금만 왕창 날릴 판이다. 이러니 지역주민들이 선거에 감동을 받기는커녕 외면해버리는 것도 무리가 아니다.
지금처럼 좋은 자치단체장이 절실한 때도 없다. 하지만 그런 사람을 뽑기가 너무도 힘들다. 선거 후보를 올림픽 대표선수 뽑듯 투명하게 할 방도는 없는 걸까. 우리 조상들은 삼국시대 때부터 공천과 유사한 ‘천거(薦擧)제’를 시행했다. 고려 인종은 부적격자를 추천한 관리를 처벌하는 법까지 시행했다(1127년). 조선 개국 이후 경국대전 편찬 때 이 제도는 더욱 체계화됐다.
고려 때는 부적격자 추천 처벌도
이번 지방선거 때부터 여야 각 정당이 ‘공천실명제’를 실시하라. 아파트를 짓는 데도 공사 감리 시행을 누가 했는지 밝히는 ‘공사실명제’를 한다. 그렇다면 지방자치 후보의 공천과정을 밝히지 못할 이유가 없다. 어느 공천심사위원이 누구를 어떤 이유로 밀었는지 밝힌다. 그리고 당선자가 재임 중 비리를 저지르면 그를 공천한 심사위원들에게도 응분의 책임을 묻는다. 고려, 조선시대 때 조상이 하던 것을 지금 못할 이유가 없다.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