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인준 칼럼]선진국은 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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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0년 2월 25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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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박 대통령 취임 2주년을 맞으며 윤증현 기획재정부 장관은 “이 정부의 남은 3년 동안 우리가 합심 노력한다면 선진국을 따라가는 수준을 넘어서서 한국형 선진국 모델을 만들어나갈 수 있으리라 믿는다”고 말했다. 미국, 유럽 주요국, 일본 등은 선진국이지만 각각 약점도 있으므로 우리는 이들의 장점만 선별적으로 취하면서 우리의 강점을 극대화해 ‘결함이 가장 적은 선진국 모델’을 만들어보자는 얘기 같다.

선진국 분류는 대략 7가지가 국제적으로 통용된다. 국제통화기금(IMF)이 평가하는 고도경제국,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고소득 회원국, 세계은행이 꼽는 고소득 경제국, 유엔개발계획(UNDP)이 매기는 인간개발지수 우량국가, OECD 개발원조위원회 회원국, 미국 중앙정보국이 분류하는 고도경제국, 영국 주간지 이코노미스트가 내놓는 삶의 질 상위국가 등이다. 한국은 다 포함돼 있다.

경제의 여러 지표에서 우리나라는 세계 10∼15위의 상위권에 올라있다. 세계지도에 그려지는 237개 나라 중에 이 정도면 자랑스러워할 만하다. 그러나 우리나라를 선진국이라고 생각하는 국민은 거의 없다. 선진국 문턱을 넘자고 하지, 우리는 선진국민이라고 당당하게 말하지는 못하고 있는 것이다. 자기비하일 수도 있겠으나 아직 우리나라를 선진국이라고 내세우기엔 부끄러운 게 많기 때문이다. 좀 먹고살게 됐다고는 하지만 여전히 후진적 행태를 끌어안고 있는 자화상 앞에 서있기 때문이다.

부패, 정치 후진성, 기초질서 혼란

부패가 대표적이다. 하루가 멀다 하고 터져 나오는 교육계 비리를 보고 있자면 역대 정부, 그리고 지금의 이명박 정부가 외쳐온 ‘부패 없는 세상’은 그야말로 공염불이었구나 싶다. 교육청, 일선학교 할 것 없이 매관매직으로 교육권력을 팔고 사며 교육을 치부의 수단으로 삼는 사람들이 이 나라 교육을 말아먹는구나 생각하니 암담하다. 교육계가 이런 부도덕 DNA에 의해 작동되고 있는데 공교육이 정상화되겠는가. 선진국에서 학부모와 교사 교장이 촌지로 유착되는 사례를 찾아보기 어려운 것은 그들 나라의 교직자들이 우리 교직자들보다 더 나은 처우를 받기 때문이 아니다. 뒷돈을 주지 않아도 교사가 학생들을 위해 열정을 바치는 나라, 그게 선진국이다.

어느 학교에서 식자재 납품비리가 불거지자 교육청 당국자는 메스를 대기는커녕 “내가 이 자리에 있는 동안만 제발 일이 커지지 않도록 조용히 해 달라”며 덮기에 바빴다고 한다. 교육부 과장급 이상으로 박사 못 따면 바보라는 말까지 있는데 대학들이 ‘보험 들기’ 차원에서 학위를 주는 것이고, 교육부 간부들은 줄줄이 대학 요직에 스카우트돼 ‘예산 따주기’로 보답한다. 이런 패거리 먹이사슬이 교육계에만 있는 것도 아니다. 국민권익위원회 당국자는 “검찰 법원 간에도 서로 건드리지 말자는 카르텔이 있고, 건설 분야의 부패 관행도 안 깨졌다”고 말한다.

부패를 줄이자면 개인의 도덕성, 공직자의 책임의식과 준법정신, 정치문화 개혁 등이 다 필요하지만 공익과 사익이 선순환하도록 유도하는 국가사회적 시스템이 절실하다. 정부는 이에 대해 깊이 천착하고, 부패 사슬을 하나하나 끊어내야 한다. 그리고 부패 범죄를 가볍게 처벌하는 사법부, 정치비리 수사를 탄압이라고 역공하는 정치권을 국민이 강력히 비토해야 부패를 줄여낼 수 있다.

선진국 문턱을 넘기 어렵게 하는 또 하나의 요인은 정치의 후진성이다. 정치가 사회갈등을 완화하기는커녕 증폭하기에 여념이 없는 나라가 선진국일 수는 없다. 국회법도 있고, 정당별 당헌당규도 있지만 국회에서나 정당에서나 정치적 의사결정의 룰조차 통하지 않는 나라는 선진국이 아니다.

이런 수준의 정치나 지켜봐야 하는 것은 국민이 그런 정치판을 만들어주었기 때문이다. 국회의원이건 지방정치인이건 유권자들이 후보들의 자질을 꼼꼼히 따져 영남에서도 민주당 후보를 당선시키고, 호남에서도 한나라당 후보를 당선시킨다면 정당들이 공천부터 더 엄격하게 할 것이다. 그런 점에서 6월 2일의 지방선거는 국민이 후보를 선택하는 일이기도 하지만, 정치의 선진화를 이룰 자격이 있는 국민인지 스스로 시험받는 장(場)이다.

李정부, 3개 과제 정면 태클해야

우리가 선진국민이 되느냐 못되느냐를 가르는 또 하나의 잣대는 사회 기초질서 확립 여부다. 해마다 1000만 명 안팎의 국민이 해외에 나가는데, 많은 이들이 선진국에서 보고 느끼는 것은 ‘자유롭되 질서가 있다’는 사실이다. 무법 불법 탈법을 관대하게 봐주라고 떼쓰는 국민이 넘치는 나라가 선진국이 될 수는 없다.

부패, 정치 후진성, 기초질서 혼란을 최대한 없애는 것이 선진국으로 가는 지름길이다. 이것이 오늘 임기 3년차를 시작하는 이명박 정부의 막중한 과제임은 말할 것도 없다.

배인준 논설주간 injoo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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