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 전 대통령과 이명박 대통령은 ‘닮은꼴 대선공약’을 내세운 적이 있다. 장애인 연금제도다. 두 사람은 “근로능력이 떨어지고 생활형편이 어려운 중증장애인에게 매달 일정액을 연금으로 주겠다”고 약속했다. 일을 하지 못해 국민연금에 가입할 수 없는 중증장애인의 복지를 위해 별도의 연금을 만들자는 것이었다. 노무현 정부 때는 예산 문제로 실시하지 못했다. 이명박 정부 들어서도 쉽사리 성사되지 않다가 지난해 말에야 법안이 국회 보건복지가족위원회를 통과했다. 정부도 7월 시행을 대비해 1519억 원의 예산을 배정했다. 내년부터는 연간 3000억 원의 재원을 받을 수 있는 길도 열었다.
최근 동아일보가 전문가 10명에게 이명박 정부 복지 정책의 잘잘못을 물었을 때 장애인 연금제도 도입을 잘한 것 중 하나로 꼽았다.
그러나 이 법안은 국회의원들의 무관심과 기획재정부의 ‘몽니’로 이번 임시국회에서 처리되지 못할 가능성이 높아지면서 7월 시행도 불투명해졌다. 25일 열린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에서는 기초장애연금법안이 안건 목록에도 포함되지 못했다. 본회의 마지막 날인 26일에도 논의가 안 된다면 다음 국회 때까지 의결을 미뤄야 한다.
법이 통과되려면 국회의원들이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 하지만 세종시 논란에 휘말린 국회는 여기까지 신경 쓸 여유가 없어 보인다. 역점 정책으로 추진하던 한나라당 의원들도 미적거리고 있다. 처리하지 못하고 쌓아둔 법안이 많아 시간이 없다는 것이다. 일부 의원은 “장애인단체들도 액수가 적다면서 환영하는 것 같지 않은데 우리가 나서서 서두를 것 없다”는 반응이다. 4월 임시국회에서도 통과될 보장이 없는 셈이다.
재정부도 한몫 거들고 있다. 재정부는 ‘3급 이하 대통령령이 정하는 중증장애인’을 연금 수급 대상으로 삼은 것을 문제 삼고 있다. ‘3급 이하’면 4∼6등급도 받을 수 있는 여지가 생겨 내년부터 예산이 늘어날 가능성이 크다는 설명이다. 그러나 법률 형식과 문구가 적합한지 따지는 마지막 단계에서 법안 내용을 문제 삼는 것은 이해하기 힘들다.
한 의원 보좌관은 “재정부가 추진하던 영리병원 설립이 지난해 12월 보건복지가족부의 반대로 사실상 무산되자, 복지부 예산 법안에 깐깐하게 구는 것 아니냐”고 말했다.
이 제도를 도입하면 장애수당을 받던 중증장애인 19만 명뿐 아니라 신규 수급자 13만 명이 연금을 받게 된다. 국회가 “다음 기회에”라고 말하기엔, 장애인들의 한숨이 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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