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이종식]지자체장 수사 ‘정치편향’은 없나

  • 동아일보
  • 입력 2010년 3월 3일 03시 00분


선거와 돈은 불가분(不可分)의 관계다. 지방선거는 더욱 그렇다. 국회의원은 임기 내내 일정액의 후원금을 모을 수 있지만 지방자치단체장은 사정이 다르다. 공직선거법상 선거 때만 후원금을 모금할 수 있기 때문이다.

조직 관리가 중요한 지자체장 후보자들은 선거를 한두 번 치르고 나면 거덜 나기 십상이다. 당선된 뒤 ‘검은돈’의 유혹을 쉽게 떨치지 못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지난해 11월 뇌물 수수 혐의로 검찰 소환을 앞두고 스스로 목숨을 끊은 오근섭 전 경남 양산시장도 선거자금으로 빌린 60억 원이 벗을 수 없는 굴레가 됐다.

숫자로만 보면 현직인 민선 4기 지자체장들이 3기 때보다 부패 범죄에 덜 연루된 듯 보인다. 대검찰청에 따르면 민선 3기(2002∼2005년)에 뇌물수수 등 직무 관련 범죄로 재판에 회부된 지자체장은 모두 52명이었다. 이 가운데 63%인 33명은 구속 기소됐다. 전체 기소자 가운데 광역자치단체장도 8명이나 들어 있다. 반면 2006년 7월 임기를 시작한 민선 4기에서는 총 33명이 기소됐고 절반가량인 17명이 구속됐다. 광역단체장은 한 명도 없다. 물론 선거법위반혐의로 기소된 경우까지 합치면 95명에 이른다.

이 같은 수치는 유권자들이 몇 차례의 지방선거를 거치면서 ‘학습효과’를 통해 어느 정도 옥석을 구분해가고 있음을 보여준다. 하지만 정치적 역학관계가 작용한 것도 부정할 수는 없다.

김대중 정부 후반기인 2002년 6월 치러진 민선 3기 지자체장 선거는 당시 야당이었던 한나라당이 압승했고, 노무현 정부 들어 검찰은 ‘별 부담 없이’ 재임 중인 기초단체장에 대한 수사를 벌였다. 4년 전 민선 4기 지방선거에서도 당시 야당이었던 한나라당이 기초자치단체 230곳 가운데 155곳을 휩쓸었다. 하지만 2007년 대선에서 한나라당이 승리하면서 현직 지자체장에 대한 부패 수사는 주춤했다. 정권 교체기에 검찰의 사정(司正)수사가 주춤해진 탓도 있지만 여야가 뒤바뀐 정치상황도 알게 모르게 작용했다.

또다시 ‘돈의 계절’인 선거철이 다가오고 있다. 검찰은 사상 최대 규모의 인력을 투입해 불법선거를 차단하겠다고 밝혔다. 이명박 대통령도 기회가 있을 때마다 토착비리 척결을 주문하고 있다. 인·허가 비리와 인사 청탁 등 한국형 고질병 앞에선 여당 출신이냐 야당 출신이냐가 따로 있을 수 없다. 또 군기잡기식의 반짝 수사로는 부패의 내성(耐性)만 키울 뿐이다. 민주주의의 기초인 지방자치선거에서 돈 잔치가 벌어지고, 거액의 선거비용을 벌충하기 위해 비리를 저지르는 악순환을 끊을 수 있도록 검찰이 더욱 분발해야 할 때다.

이종식 사회부 bell@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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