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방향으로 달리는 2차로의 고속도로가 있다. 시속 10km부터 200km까지 속도 중 자기가 원하는 속도에 맞춰 달리려는 수많은 운전자를 동시에 만족시키는 최적의 주행 방법은?
답은 간단하다. 고속도로 규칙대로 주행은 주행선으로 하고 추월할 때만 추월선을 이용하면 된다. 자신이 원하는 속도로 주행선을 달리다 가로막는 차가 있으면 추월한 뒤 다시 주행선으로 들어가면 된다.
비현실적인 퀴즈라는 걸 잘 안다. 고속도로엔 속도제한도 있고 계속 시속 10km 혹은 200km로 달릴 수도 없다. 하지만 많은 차가 가장 효율적으로 달릴 수 있는 ‘비법’이 바로 이거다. 그렇기에 고속도로 차로를 주행선과 추월선으로 나누는 것이다.
유럽의 고속도로에선 대체로 이 선이 지켜진다. 간혹 추월선으로 주행하는 차가 있지만 뒤에서 자기보다 빨리 달리는 차가 접근하면 얼른 주행선으로 비켜준다. 자신을 추월하려는 차가 속도제한을 훨씬 넘었더라도 말이다. 단속에 걸리고 안 걸리고는 그 차의 몫이기 때문이다.
우리의 고속도로 풍경은 어떤가.
기본적으로 주행선, 추월선 구분이 무너진 지 오래다. 짐을 가득 실은 거대한 트럭이 버젓이 추월선을 달린다. 승용차도 속도 제한을 훨씬 밑도는 속도로 추월선을 달린다. 뒤에서 눈치를 줘도 꿋꿋이 느림보로 달린다. 성질 급한 뒤차 운전자는 주행선으로 추월하고…. 결국 가로막는 차나 추월하려는 차나 모두 늦게 가는 악순환이다.
이 짜증나는 고속도로 풍경의 바탕에는 자기보다 빨리 가려는 사람을 가로막아야 직성이 풀리는, ‘배고픈 것보다 배 아픈 걸 더 못 참는’ 심리가 깔려 있다고 나는 생각한다.
여성 세계 최초 히말라야 14좌 완등을 놓고 스페인의 에두르네 파사반과 경쟁을 벌이는 산악인 오은선. 이미 13좌를 올랐기에 올봄 안나푸르나에 오르면 최종 승자가 되는 그의 앞길에 지난해 5월에 오른 칸첸중가 등정 논란이 터져 나왔다. 경쟁국인 스페인이나 외국에서가 아니라 바로 우리나라에서.
등정 논란의 진실을 떠나 오은선의 고국에서 그런 얘기가 불거진 건 허탈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오은선은 8일 안나푸르나 등정을 위해 네팔로 출국한다. 그가 성공한다면 우리 모두 그를 진정한 ‘여성 세계 최초 완등자’로 인정하고 축하해줬으면 한다.
삼성그룹 창업자 고(故) 이병철 회장의 평전 ‘크게 보고 멀리 보라’를 펴낸 일본인 야마자키 가쓰히코 씨는 동아일보와의 인터뷰에서 “큰일한 사람을 찬양하고 영웅시하는 분위기가 강한 일본 문화와 비교할 때 한국 사회는 생전 이 회장을 평가하는 데 혹독했고 심지어 부당하기까지 했다”고 지적했다. 어디 이 회장뿐인가.
사후 30년이 지나도록 기념관조차 헌정받지 못하는 박정희 전 대통령을 비롯해 오늘의 ‘주식회사 대한민국’을 창업하고 수성한 영웅들에게 우리는 너무나 박한 대접을 해왔다. 그들의 허물에 돋보기를 들이대고 발목을 잡아왔다.
2일 밴쿠버 겨울올림픽의 영웅들이 돌아왔다. 메달리스트들은 물론이고 메달을 따지 못해 분루를 삼켰거나 비인기 종목의 설움을 딛고 고군분투한 이들까지 영웅시하는, 모처럼 건강한 에너지가 우리 사회에 충만하다. 이를 계기로 후진성의 딱지 같은 ‘배 아파’ 심리를 버릴 때가 됐다. ‘사촌이 땅을 사면 배 아프다’는 말이 있는데 그만큼 아팠으면 이젠 안 아플 때도 됐다.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