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에서/김창혁]외눈박이의 독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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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0년 3월 5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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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의 발자국을 보고 한자(漢字)를 만들었다는 전설 속의 창힐(蒼(힐,갈))은 눈이 네 개인 ‘네눈박이’였다. ‘창힐의 향연’을 쓴 다케다 마사야(武田雅哉)는 “창힐의 초상을 한번 지그시 응시해보자. 네 모서리가 있는 눈의 배치가 사각형 문자(한자)를 창조한 성인(聖人)에 딱 걸맞다”고 했다.

그는 황제(黃帝)의 사관(史官)이었다. 황제는 중국 시조신화의 주인공들인 삼황오제(三皇五帝) 중 오제의 첫 번째. 한족들은 지금도 황제를 그들의 시조로 모신다. 한자의 발자취는 그렇게 아득하다. 광대할 수밖에 없다. 그래서인지 다케다는 한자의 세계를 더듬어 나가면서 자기가 쓴 책을 ‘눈이 두 개 부족한 것에 대한 콤플렉스의 기록’이라고 했다.

얼마 전 건국대병원 송명근 교수의 카바(CARVAR) 수술법을 둘러싸고 치열한 논란이 벌어졌을 때, 서울아산병원의 어느 외과교수가 이런 말을 했다고 한다. “외눈박이들이 두눈박이 송 교수를 이상하다고 비판하는 셈”이라고. 송 교수에 관한 기사를 내보내면서 마음속에 품고 있던 고민을 들킨 것 같았다.

동료 의사들의 문제제기, 국가기관인 한국보건의료연구원의 잠정 결론, 송 교수의 반박을 소개한 동아일보 기사에 문제가 있었다는 얘기가 아니다. 좀 더 실체적인 의문이 나를 괴롭혔다. ‘정말 두눈박이, 아니 세눈박이 천재의 연구를 외눈박이의 눈으로 재고 있는 것 아닐까’하는 의문이었다.

송 교수는 그의 카바 수술법을 세계 심장의학계의 코페르니쿠스적 혁명으로 자부하고 있다. 그의 설명을 들어보면 그럴 만도 하다. 심장 판막 수술은 지난 50년 동안 인공판막으로 바꿔 넣는 판막치환술에 의존해왔다. 10년도 못 넘기는 수술법일 뿐 아니라 1분 이상 서 있을 수도, 30분 이상 외출할 수도 없고, 잘 때도 앉아서 자야 한다. 임신이나 운동은 꿈도 꿀 수 없다. 오랜 기간 검증된 수술법이지만 생명연장장치에 불과하다는 얘기가 나오는 것도 그 때문이다. 그러나 송 교수의 수술법은 다르다. 정상인과 마찬가지로 일상생활을 누릴 수 있다. 송 교수는 ‘꿈은 박동한다’는 제목의 저서에서 “31번째 환자였던 전 국가대표 농구선수 한기범 씨는 등산도 한다”고 썼다. ‘코페르니쿠스적’까지는 몰라도, 분명 혁명이다.

그는 초등학교 때부터 ‘매력을 느낀’ 수학과 물리학의 도움이 아니었다면 조물주가 만든 심장 판막의 그 오묘한 운동법칙을 밝혀낼 수 없었을 것이라고 했다. 초등학교 시절 이미 미적분의 개념을 알았고, 경복고등학교 1학년 2학기 때부터는 아인슈타인의 상대성이론에 빠졌다고 한다. 그의 천재성을 보여주는 일화는 많다. 카바 수술법의 핵심이라고 할 수 있는 심장 판막엽 디자인 공식을 그는 꿈속에서 완결했다고 했다. 독일 화학자 프리드리히 케쿨레가 꿈속에서 6각형의 벤젠고리를 찾아낸 것처럼.

그는 자신을 ‘노벨의학상 예정자 송명근’이라고 부른다. 그리고 무엇보다 이 한마디. “하루 24시간 중 샤워하는 시간이 가장 불안하다. 물소리에 묻혀 응급환자가 발생했다는 전화를 놓칠 수 있기 때문이다.” 그가 쓴 이 모든 이야기들이 ‘왕따 천재’의 자기최면이나 자기기만이 아니라면, 내가 지금 쓰고 있는 이 칼럼이 ‘외눈박이의 독백’이어도 좋다. 눈이 한 개 부족한 것에 대한 콤플렉스의 기록이어도 좋다. 아니, 정말 그랬으면 좋겠다.

김창혁 교육복지부장 cha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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