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고등법원 부장판사에게 들은 얘기가 머리를 맴돈다. 지방법원 단독판사를 거쳐 임용되는 고법 배석판사들은 대개 경력 12, 13년 정도의 40대 초반이다. 지법 배석판사들은 경력 6, 7년 미만의 30대 전반, 단독판사들은 경력 8∼10년 정도의 30대 후반이 대부분이다. 이들의 다수가 이른바 진보 성향의 신문을 애독한다는 얘기였다. 보수 신문으로 분류되는 동아일보 조선일보 등을 읽는 판사는 소수라는 전언이다. ‘무죄’ 뒤의 30대 이념형 판사들
젊은 판사들의 신문 편식 현상 자체가 벌써 그들의 이념적 정치적 편향성을 암시한다. 진보 성향의 신문을 주로 읽다보니 개인적 신념은 점점 더 굳어질 수밖에 없을 것이다. 상식과 보편적 가치가 통할 여지가 좁다. 젊은이들에게 일반적으로 그런 분위기가 있다 하더라도 유무죄와 옳고 그름을 심판하는 판사 집단이 그렇다면 예사로운 일이라 할 수 없다. 그런 사람들에게 헌법적 가치의 수호와 법질서 유지를 맡겨야 하다니 회의(懷疑)가 든다.
시국선언에 참여한 전교조 간부들과 ‘빨치산 교육’ 교사, MBC ‘PD수첩’ 허위보도, 민노당 강기갑 의원의 국회 폭력 등에 대한 잇따른 무죄 판결이 어떤 배경에서 나왔는지 수긍이 간다. 판사 120여 명의 사조직인 우리법연구회를 둘러싼 논란도 마찬가지다.
이념형 판사들은 편향성 외에 폐쇄성이란 특성도 갖고 있다. 의견이나 성향이 다른 동료 판사들의 얘기는 들으려 하지 않거나 무시하는 경향을 보이기도 한다. 선배 판사들이나 법원장의 조언, 사법행정권 행사를 재판의 독립 저해 요인으로 간주하기 일쑤다. 그 전형적 사례가 지난해의 신영철 대법관 징계 파동이었다.
재판의 독립은 판사가 자신을 벽 속에 가둬 고립시키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자폐(自閉)이고 닫힌 마음일 뿐이다. ‘판사는 판결로만 말한다’는 정신의 진정한 실천이라고 할 수도 없다. 우리법연구회처럼 이념 성향이 같은 판사들만의 토론을 통해 집단의 신념을 더욱 강화하는 것도 닫힌 마음의 표현이다.
판사들도 외부인과 교통하고 소통해야 한다. 요즘처럼 복잡다단하고 변화무쌍한 세상에서 성역(聖域)에 갇혀 고고한 자세를 보이는 것만이 판사의 덕목은 아닐 것이다. 세상을 모르는 판사가 세상 사람들이 받아들일 수 있는 판결을 하기는 어렵다. 법원 내부에서도 동료 선후배 판사들끼리, 그리고 법원장과도 의견을 나누고 다른 견해를 경청할 필요가 있다. 균형감각을 끊임없이 점검하기 위함이다.
검사 변호사와의 잦은 접촉은 편파 시비를 부르거나 전관예우로 비칠 소지도 없지 않다. 하지만 법관윤리강령에 따른 절도(節度)와 품위를 지키고 공정한 재판 자세를 견지한다면 문제될 리 없다.
선배 판사는 후배 판사 키울 책임
판사들의 열린 마음이 사법개혁의 기본 요소다. 그렇지 않고는 국민의 신뢰를 받는 사법부가 될 수 없을 것이다. 사법부 안팎에서 제기되는 수많은 개혁과제는 거기에 따라가는 것이다. 정치권이나 언론의 비판에 밀려 마지못해 하는 시늉으로는 사법부의 난국을 풀 수 없을 것이다. 사법개혁은 시대적 과제다. 당장의 화살만 피하면 된다는 식의 안이한 자세로는 독립도 신뢰도 얻을 수 없다.
그제와 어제 1박 2일간 전북 무주리조트에서 열린 전국법원장간담회가 큰 전환점이 되기를 바란다. 법원 내 소통을 위한 방안들이 제시되고 논의됐다는 소식이 눈에 띈다. 법원장이나 선배 판사들은 후배 판사들을 올바로 키워야 할 교육적 역할과 책임이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자면 비겁하지 말아야 한다. 제도적인 재교육 방안도 필수적이다. 기껏해야 경력 10년 안팎의 30대가 판사로서 완성된 듯한 착각을 하지 않도록 항상 경계해야 한다.
상급심이 남아 있다고 1심 판결을 가볍게 여기는 사법부의 일부 풍조는 곤란하다. 1심이 사실관계에 대한 기초적 판단을 제대로 해줘야 상급심이 법해석과 조정 기능을 한층 더 바르게 수행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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