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의 부모나 조부모가 학교에 다니던 시절에는 방과후 학교라는 게 없었지만 선생님들은 여러 이유로 학교가 파한 후에도 애들을 교실에 남게 했다. 싸움했다고 반성문 쓰는 아이 너머로 선생님과 서넛의 아이들이 받아쓰기가 틀리지 않을 때까지, 혹은 산수 문제를 제대로 풀 때까지 함께 씨름하는 장면이 어렵지 않게 떠오른다.
교육에서 학업성취는 매우 중요한 요소임에 틀림없고 학력이 국력이 되는 세상에서 학생 교사 국가는 학업성취 향상을 위해 끊임없이 노력해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국가 수준의 학생 학업성취 평가는 필요하다. 평가 결과는 합리적인 정책으로 연결돼야 하고 부작용을 최소화하도록 세심하게 배려해야 한다.
2009년도 국가수준 학업성취도 평가 결과가 최근 발표됐는데 기초학력 미달 학생 비율이 줄고 전년도에 학력향상중점학교로 선정된 학교들의 결과가 크게 향상됐다고 한다. 보통 이상의 결과를 얻은 학생의 비율도 높아졌다니 반가운 소식이다. 아울러 처음 실시 때의 불미스러운 문제도 많이 해소된 점은 평가할 만하다.
현재의 평가기본 틀, 즉 초6 중3 고2(올해부터) 등 3개 학년 전체 학생을 대상으로 하고 기초학력 미달 학생과 학력향상중점학교를 집중 지원하는 방식은 학력 상황을 거시적으로 파악하여 대책을 세울 수 있게 하면서도 지나친 성적 위주 경쟁을 피할 수 있도록 한다는 점에서 합리적이다. 평가 결과를 4등급으로 고지하는 방식도 당분간은 유지할 필요가 있다.
그러나 국가수준 학업성취도 평가의 지속적인 발전을 위해 유념해야 할 점도 적지 않다. 우선 2010년부터 개별 학교 단위로 결과를 공개한다는 계획은 더 신중하게 접근할 필요가 있다. 학교 간 경쟁을 유도하고 책무성을 강화한다는 긍정적 효과가 있는 반면 학교별 줄 세우기로 특정 학교에 대한 낙인과 기피라는 부정적 효과를 나타낼 수 있다.
더욱이 교사평가, 학교평가에서 학생의 학업성취를 지나치게 강조한다면 학습장애학생, 통합교육을 받는 특수교육 학생에 대한 기피와 같은 비교육적 현상을 초래할 수 있다. 2년 연속 부진학교에 대한 기준과 조치에 대해서도 더 신중해야 한다. 학업성취에 영향을 미치는 요인은 학교효과만이 아니며 가정배경, 또래집단의 영향력이 더 크다는 사실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모든 학년, 모든 과목에서 성취도 향상이 이루어진 이번 결과를 칭찬하는 데 인색할 필요는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혹시 학교 현장에서 성적위주 문제풀이식 준비를 강요한 것은 아닌지 꼼꼼히 점검해야 한다. 선진국에서도 문제가 되는 출제의 난이도가 적합했는지, 기초학력 미달 학생 지도가 정식 교사보다 보조강사에게 지나치게 의존하는 구조는 아닌지 등도 점검하고 의구심을 해소하기 바란다.
또한 기초학력 미달이 누적되지 않도록 일찍 개입할 필요가 있다는 점에서 국가수준 평가와 별도로 초등학교 저학년 때 학급 학교 교육청 단위에서 학력을 진단하고 집중적으로 지도하는 시스템을 구축하는 일은 빠를수록 좋다. 어느 정도를 기초라고 보는 것이 적합한가에 대해서도 지속적 합의를 도출해 나가는 방안이 바람직하다. 학생이 자신의 성취도 수준을 지금보다 구체적으로 알도록 하는 방안도 중장기적으로 검토할 필요가 있다.
우리 학교에서 학생의 학력 신장에 교육적으로, 그리고 적극적으로 개입하는 선생님들의 모습을 더 많이 볼 수 있으면 좋겠다. 그렇게 될 때 교사와 학교, 공교육에 대한 사회적 신뢰는 구호로 외치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형성된다. 국가수준 학업성취도 평가의 목적은 줄 세우기가 아니라 향상과 발전임을 잊지 말아야 한다.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