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박 정부의 북한 버릇 고치기가 진정성이 있음을 보여준 것이 대통령의 3·1절 경축사이다. 임기 중반에 접어드는 2010년의 벽두에, 그것도 정상회담설이 떠돌고, 6자회담 개최가 긴박하게 논의되는 이때에도 대통령은 “남한을 단지 경제협력의 대상으로만 여기는 그 생각을 바꿔야 한다”고 질타했다.
임기 초 북한 핵 폐기를 최우선 목표로 내걸었을 때, 과거 정부와의 차별화를 위한 대증 정책으로 바라본 시선도 이쯤 되면 ‘장난 아니네’라는 말로 바뀔 법하다. 실용과 원칙이라는, 어찌 보면 병립하기 어려운 정책기조를 말했을 때도 좋은 말만 갖다 붙이는 관성 때문이라고 비판했던 이들도 이쯤 되면 고개를 갸우뚱거릴 법하다.
경제는 남한과, 정치 군사는 미국과만 협상하겠다는 북한의 태도가 고쳐지지 않는 한 남한은 최소한의 인도적 지원만 할 것이며 그 이상의 지원은 없다는 의지를 대통령과 정부는 일관되게 밝혔다. 북한이 태도를 바꿔 남북한이 핵 문제를 포함하여 한반도 관련 의제를 모두 다 진지하게 대화한다면 과거 정부와는 비교도 할 수 없는 대규모의 지원을 할 수 있고, 남북관계는 사실상의 통합 단계에 들어갈 정도로 진전된 단계에 진입할 것임을 역설하고 있다.
문제는 이게 가능한 그림이냐는 점이다. 뜻은 좋은데 북한의 나쁜 버릇을 고칠 수 있느냐는 말이다. 가능성보다 노력과 의지가 중요하고 목표보다 과정이 중요하다면 의미가 없지 않다. 북한이 나쁜 버릇을 들이는 데 남한 정부도 일조했던 것이 사실이다. 되지도 않을 북한 변화를 위해서 경제협력―사실 협력이라기보다 일방적인 지원이었지만―이 마치 무슨 전가의 보도인 양 휘둘러댄 적이 있었고, 북한은 남한을 ‘봉’으로 알게 된 것이 현실이다.
그러나 북한의 나쁜 버릇이 과거 남한 정부의 무분별한 대북지원 탓만은 아니라는 데 문제의 심각성이 있다. 아무리 같은 동포라 해도 남한은 북한에 외생적인 존재이다. 북한이 외부 세계와 폭넓은 교류를 해온 나라라면 모르지만 60년 넘게 유아독존으로 살아온 북한이 남한의 행동에 좌지우지되기는 어렵다고 봐야 한다.
북한이 미국을 겨냥한 안보정책을 갖게 된 것은 1970년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닉슨 독트린과 주한 미군 철수 논의, 미중 데탕트, 월남 패망 등 국제정세가 급변하면서 미국과의 대화에 열을 올리기 시작한 북한은 끊임없이 미국의 문을 두드렸다. 역설적으로 미국과의 대화가 열리게 된 계기는 북한 핵 문제였다. 핵 문제 해결과 대미관계 정상화를 맞바꿀 여지가 생겼다. 그 사이 남북한의 국력 격차는 좁히기 어려운 상태가 됐고 이제 북한은 단순히 미국과의 대화를 위해서가 아니라 생존을 위한 정권 정체성 유지를 위해서 미국과의 정치군사적인 협상을 해야 한다.
사실 남북경협은 북한에는 양날의 칼이다. 한편으로는 북한 경제에 숨통을 틔워주는 역할을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북한 체제의 목줄을 겨냥하는 예리한 흉기이다. 북한 정권이 이를 모를 리 없다. 그래서 북한은 강력하게 통제해 놓은 공간에서만 경협을 받아들인다. 북한의 나쁜 버릇은 북한 스스로 만든 것이지 과거 남한 정부 탓도, 미국 탓도, 중국 탓도 아니다.
북한의 나쁜 버릇을 고치기 위한 정부의 노력을 지지하면서도, 버릇을 고치라고 말한다고 해서 고쳐지지는 않을 것이라는 생각도 지울 수 없다. 북한이 행동으로 국제사회에 진정성을 보여줘야 하는 것 못지않게 우리의 행동도 필요하다. 정부의 일관된 정책기조는 만천하에 충분히 밝혀졌고 원칙은 충만하다. 이제는 실용에 기초한 더욱 구체화된 그랜드 바겐의 내용을 제시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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