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민병선]천주교 주교회의 앞의 ‘정치의 강’

  • 동아일보
  • 입력 2010년 3월 10일 03시 00분


천주교 최고 의사결정 기구인 주교회의(의장 제주교구장 강우일 주교)의 춘계 정기총회가 8일 오전 서울 광진구 한국천주교중앙협의회 건물에서 개막해 12일까지 열린다.

전국 13개 교구 22명의 주교가 참가해 30여 개의 의제를 다루는 이번 총회에서 가장 눈에 띄는 의제는 천주교단 차원에서 4대강 사업에 대한 반대 운동을 전개할지 여부다. 8일에는 심명필 국토해양부 4대강살리기추진본부장이 참석해 사업의 개요와 필요성을 설명한 뒤 서울대 환경대학원 김정욱 교수가 사업의 문제점을 지적했고 주교들의 질의응답이 이어졌다. 4대강 사업에 대해 반대운동을 벌일지, 관련 성명서를 발표할지는 12일 오전 주교회의가 끝나면 윤곽이 드러날 것으로 전망된다. 주교회의 홍보팀은 “최근 사회적으로 예민한 현안을 의제로 삼은 것은 이례적이다”고 말했다.

같은 날 ‘4대강 사업 저지를 위한 천주교연대(천주교연대)’는 서울 명동성당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4대강 사업 중단을 촉구하는 선언문을 발표했다. 선언문에는 이용훈 수원교구장 등 주교 5명을 포함해 1104명의 사제가 서명했다. 경향신문과 한겨레는 이 기사와 함께 사제들이 이번 6·2 지방선거에서 4대강 사업을 반대하는 후보를 지지하기로 했다고 보도하기도 했다.

천주교연대 상임대표인 조해붕 신부(서울대교구 환경사목위원장)는 9일 기자와의 통화에서 “4대강 사업의 실체에 대해 교우들에게 알리는 활동을 전개할 예정이지만 특정 후보를 지지하는 등의 정치적 활동은 벌이지 않을 것”이라며 “신부 개인이 특정 후보를 지지하는 활동을 벌일 수는 있겠지만 단체 차원에서 그런 일은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조 신부의 해명이 있었고 주교회의의 결과도 나오지 않았지만 지방선거가 석 달도 안 남은 시점에서 천주교단의 이러한 움직임은 정치적 오해를 불러일으킬 우려가 있다. 민감한 시기에 정부의 특정 정책에 대해 교계 차원에서 논의하는 게 선거에 영향을 줄 수 있고, 특정 정책에 대한 반대는 특정 후보에 대한 지지로 이어질 수도 있기 때문이다. 천주교에서는 사제들의 개인 활동을 제약하진 않지만 교회법은 특정 후보지지 등 정치적 이해관계가 얽혀 있는 활동을 금하고 있다.

고 김수환 추기경을 비롯해 천주교단은 한국사회의 민주화 과정에서 큰 역할을 했다. 군사 정부에 용기 있는 쓴소리를 던지기도 했다. 그러나 이제 국민의 정치의식은 그때와 달라졌다. 정치적으로 민감하고, 선거의 특정 후보에게까지 영향을 끼칠 수 있는 사안이라면 교인들 각각의 신앙과 판단에 맡기는 게 교단 전체에 대한 오해와 부작용을 멀리할 수 있는 길이 아닐지.

민병선 문화부 bluedot@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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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천 많은 댓글

  • 2010-03-10 18:42:11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 국교는 인정되지 아니하고, 종교와 정치는 분리되어 국교공화국이 아니다, 그러니 어디 종교인이 자신들만의 교리에 어긋나지 않고, 국민으로 민주공화국의 법질서에 어긋나지 않는다면, 종교의 자유를 가지는 것은 권리이지 국민으로 어떤 의무를 지는 것이 아니라서 정치문제에 개입활동하지 못하라는 법이 어디있나? 그러나 회의주의자 잘못헌신, 기회주의자 편견봉사, 폭군주의자 영접감사,,, 부작용은 주의깊게 고려해볼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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