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에서/윤양섭]“파르테논을 팔아라”

  • 동아일보
  • 입력 2010년 3월 11일 03시 00분


요즘 그리스와 독일 간 감정싸움이 격렬하다. 독일의 한 언론인이 그리스 보수성향의 주간지 ‘아테네 플러스’에 쓴 그리스 친구에게 보내는 편지 형식의 기고가 불씨가 됐다. 글에서 ‘당신은 우리에게 비싼 친구였다. 몇 년간 독일인이 그리스인에게 1인당 9000유로를 지원해줬다’면서 그리스의 탈세 부패 게으름을 꼬집었다. 더하여 독일잡지 포쿠스의 보도는 불에 기름을 부은 격이었다. 잡지는 ‘유로화 가족 중 사기꾼’이라는 제목 아래 미로의 비너스상을 모욕적으로 편집한 사진을 표지에 실었다. 그리스가 발칵 뒤집혔다. 그리스 외교부는 독일대사를 불러 엄중 항의했고, 국민들은 독일제품을 보이콧했다. 일각에선 독일의 나치 전력까지 들고 나올 정도로 격앙됐다.

그리스의 자존심에 상처를 준 일은 이뿐이 아니다. 최근엔 대규모 재정적자와 높은 실업률 탓에 포르투갈 이탈리아 스페인과 함께 ‘돼지들(PIGS)’이라고 불리는 수모도 겪고 있다.

그리스가 어떤 나라인가. 철학과 문학, 역사 등 각 분야에서 그리스를 빼고는 서양문명을 논하기 어렵다. 또 민주주의와 올림픽의 발상지이기도 하다. 콧대 높은 그들에게 작금의 상황은 견디기 힘든 수치다.

그러나 과거의 영광과는 달리 요즘 그리스는 별로 내세울 게 없다. 재클린 케네디의 두 번째 남편으로 더 유명한 선박왕 오나시스를 배출할 정도로 조선 해운업이 번성했으나 지금은 경쟁에 밀려 애물단지가 됐다. 그나마 내세울 만한 게 농업과 국내총생산(GDP)의 15%를 차지하는 관광산업이다. 올림푸스 언덕이나 산토리 섬 등을 찾는 관광객들이 쓰고 가는 돈이 나라의 큰 수입인 셈이다.

유로존에서는 그리스를 돕는 데 대한 불만이 팽배하다. 자신들은 은퇴시기까지 늦춰가면서 절약하며 사는데 정작 그리스인들은 조기은퇴하면서 연금을 받고, 툭하면 파업을 일삼는데, 왜 우리가 그들을 지원해야 하느냐는 불만이다. 그 때문에 ‘돈이 부족하면 파르테논 신전이나 아크로폴리스, 무인도를 팔아야 하는 것 아니냐’는 비아냥거림까지 나온다.

이런 지경에 이르자 검은 뿔테 안경의 유명가수 나나 무스쿠리가 전 세계 그리스 동포들에게 조국을 돕자며 호소하고 나섰다. 유럽의회 의원을 지낸 까닭에 받게 된 연금 전액을 조국에 바치겠다며 “그리스가 암적인 존재로 취급당하는 것을 두고 볼 수 없었다”는 그의 말이 사무친다.

1인당 GDP 3만 달러의 선진국 그리스가 유럽의 이웃들로부터 지진아 취급을 받게 된 것은 막대한 재정적자 탓이다. 지도층의 공공연한 탈세와 만연한 부정부패, 공공부문의 비효율 등이 재정난의 근본 원인이다. 여기에 복지만을 챙기는 노조도 한몫 했다. 그리스 정부가 최근 재정적자 타개책으로 공무원의 보너스와 수당을 줄이겠다고 발표하자 공공노조는 받아들일 수 없다며 총파업을 예고했다. 유로존 동료들 입장에선 그야말로 배부른 파업이다.

헤지펀드와 환투기 세력들이 약점을 파고들며 그리스를 연일 공격하고 있다. 죽음의 냄새를 맡은 하이에나처럼 말이다. 결국 그리스 총리는 미국에 이들 투기세력에 대해 고삐를 죄어 달라고 요청하기에 이른다. 마치 1997년 한국의 외환위기 전후를 보는 듯하다. 우리는 그 당시의 온갖 비효율에서 얼마나 벗어나 있을까. 생산성이라고는 전혀 없는 ‘불임 국회’를 보면서 이래도 되는 것일까 하는 걱정이 앞선다.

윤양섭 국제부장 laila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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