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김용석]녹색성장 부처 협의, 결론은 밥그릇 챙기기

  • 동아일보
  • 입력 2010년 3월 12일 03시 00분


일을 나눠 맡자고 회의를 시작했다. 그러나 회의를 거듭할 때마다 엉뚱한 결론이 나왔다. 일을 나누기는커녕 새로운 옥상옥(屋上屋)이 계속 만들어졌다. 정부의 여러 부처가 녹색성장기본법 시행령 마련을 위해 올해 1월부터 두 달여 동안 벌여온 업무협의 얘기다.

지식경제부, 환경부, 기획재정부, 국토해양부 등 각 부처 국장급 이상 간부들은 올해 들어 7차례 이상 회의를 했다. 온실가스 및 에너지 사용량 감축 계획의 실행방안을 마련하자는 것이 회의 주제였다.

하지만 처음 회의를 시작하면서부터 업무 관할을 놓고 의견 대립이 팽팽했다. 온실가스 감축 목표관리제의 대상이 되는 기업과 공공기관이 어떤 기관을 거쳐야 하는지가 관건이었다. 대립하던 부처들은 창구를 나눠 맡는 대신 새 조직을 만드는 데 합의했다. 이렇게 해서 당초 법에는 없었던 기후변화에너지센터를 국무총리실에 신설하는 방안이 확정됐다. 센터는 각 부처에서 파견한 공무원들이 자리를 채울 것으로 보인다. 결국 ‘자리 늘리기’로 결론을 낸 셈이다.

회의가 거듭되면서 에너지 절감과 온실가스 감축 규제를 누가 맡을 것인지가 쟁점이 됐다. 녹색성장위원회는 에너지 절약은 지경부가, 온실가스 감축은 환경부가 각각 맡도록 하는 시행령 초안을 작성해 교통정리를 제안했다. 이때만 해도 업무 관할이 정해지는 분위기였다. 하지만 양보는 없었다. 초안 작성 직후 열린 회의에서 일부 부처가 강하게 반발하는 바람에 또다시 조율은 무산됐다. 결국 두 부처가 공동으로 맡는 중복 규제를 하기로 결론을 내리고 말았다.

업무 조율을 하자며 회의를 하면 할수록 중복이 해소되기는커녕 새로운 기관이 만들어지고 중복이 더 심해졌다. 이런 와중에 정작 중요한 규제 내용에 대한 토론은 뒷전이었다. 한 회의 참석자는 “어떤 규모의 기업, 건물에까지 온실가스 감축 의무를 지울 것인가는 중소기업의 살림살이에 큰 영향을 미치는 사항이지만 회의 과정에서 이 문제에 대해 심각한 토론을 벌인 적이 없다”고 귀띔했다.

정부가 이러는 동안 정책에 ‘울고 웃는’ 기업들은 지쳐가고 있다. 한 기업인은 “부처끼리 업무를 나눈다고 하는데 나중에 보면 어떻게 해서든 서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여지를 남겨놓는다”며 “중복 규제로 인한 효율성 저하가 심각하다”고 호소했다. 정부 부처들이 자기 밥그릇을 챙기는 일에선 절대 양보하지 않는 구태를 버리지 않는다면 이런 일은 계속 되풀이될 것이다. 공무원들에게 누구를 위한 녹색성장인지 묻고 싶다.

김용석 사회부 nex@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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