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바야(아랍 여성들이 두르는 천)를 가면무도회에서 쓰는 검은 망토처럼 덮어쓰고 몰래 메카에 들어가 보고 싶었다. 북회귀선을 지나 홍해를 건너 궁극적인 ‘천국의 문’으로 돌진해 보고 싶었다.
19세기 영국의 탐험가이자 ‘아라비안나이트’, ‘카마수트라’ 등을 번역한 리처드 버턴 경은 성지에 몰래 들어간 불법 순례자였다. 그는 아랍 의상을 입고 이슬람에서 가장 신성한 곳, 무함마드 선지자가 태어난 곳이자 그가 ‘지구의 중심’으로 불렀던 사우디아라비아 카바에 잠입했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이는 위험할 뿐 아니라 실례가 되는 시도였다.
그래서 나는 사우디에서 그보다는 조금 덜 은밀한 방법으로 이슬람 종교를 탐험해 보고 싶었다. 9·11테러에 대한 미국인의 의식과 정면충돌하는 그들의 종교를 공부해 보고 싶었다. 하지만 나의 시도는 거기서부터 모순에 부닥쳤다. 이슬람이 탄생한 요람에서조차 이슬람을 경험하는 것이 거의 불가능했기 때문이다.
바티칸에 가기 위해 가톨릭 신자가 될 필요는 없다. ‘통곡의 벽’에 가기 위해 유대인이 되거나, 달라이 라마의 연설을 듣고 그와 기념사진을 찍기 위해 불교신자가 될 필요도 없다. 최소한 기도 시간에는 이슬람 모스크를 방문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아바야와 히잡을 덮어쓰고 맨발로 인파에 묻혀 여성들만 들어가는 격리된 공간 뒤쪽에 살짝 서 있으면 가능할 줄 알았다. 한때 무슬림 제국의 중심이었던 이스탄불의 장엄한 사원 블루모스크도 이제는 수많은 관광객을 끌어들이고 있으니까. 하지만 사우디 지다의 힐턴호텔에서 나는 “비(非)무슬림은 사원 안에 들어갈 수 없다”는 말을 들었다.
나는 사우디의 왕족들에게 “성지순례 기간이 아닐 때만이라도 메카를 비무슬림들에게 열어줄 수 없느냐”고 물었다. 물론 비수기는 종교 간 대화를 나누기에 좋은 시기는 아니다. 하지만 메카나 메디나에서 이슬람에 대한 이해를 도울 수 있는 센터를 만들 수는 없는 것일까.
사우디인들이 다른 종교를 가진 사람에게 자신들의 사적인 종교의식을 들여다보고, 하얀 천으로 몸을 두른 사람들이 밀려드는 장면을 멍하니 지켜보도록 허락하는 데 전혀 관심이 없다는 것은 이해할 만하다. 그렇게 해서 전 세계의 다른 무슬림을 화나게 할 이유도 없을 것이다. (오사마 빈라덴의 성전도 걸프전쟁 당시 미군이 거룩한 땅에 발을 들였다는 ‘신성모독’에 대한 분노에서 시작됐으니 말이다.)
그래도 나는 사우디의 외교장관인 사우드 알파이살 왕자에게 사원을 볼 수 있게 해달라고 졸랐다. 사우디인들은 9·11테러 이후 강화된 비자발급과 공항 검색대의 보안이 완화되기를 바라고 있다. 그렇다면 사우디가 나서서 이슬람을 극단주의와 분리시키고 이슬람을 재조명해 볼 수 있지 않을까.
사우드 알파이살 장관은 “현재 출입이 제한된 곳은 메카와 메디나뿐이며 다른 모든 곳은 널리 공개돼 있다”고 대답했다. 그는 “문제를 일으키기 싫은 아랫사람들이야 안 된다고 하겠지만 사원에 못 들어갈 이유는 없다”며 “만약 사원에 가서 누군가가 출입을 제지할 경우 그 지역 수장에게 말하면 들어갈 수 있다”고 말했다.
‘물론 전화할 수는 있겠지. 그 사람 전화번호나 나와 있으려나.’ 나는 마음속으로 이렇게 말했다.
결국 메카 순례를 하기는 했다. 미국에 돌아가 나는 스미스소니언에 있는 아이맥스 영화관 표를 사고 ‘메카로의 여행’을 봤다. 유대인의 아버지 아브라함이 카바를 세웠다는 놀라운 내용이 영화에 나왔다. 서로 다른 종교끼리 좀 더 배워야 한다는 사실을 일깨워주는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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