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신석호]北‘나선특구법’ 5번 개정하면 뭐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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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0년 3월 16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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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일성 북한 주석은 사망 20여 일 전인 1994년 6월 17일 나진-선봉 자유경제무역지대 개발 일꾼들에게 “나진-선봉 자유경제무역지대에서 버는 돈만 가지고도 우리 인민들이 잘살 수 있다”고 말했다. 1991년 12월 27일 문을 연 나선경제특구를 잘 개발하라는 유훈(遺訓)을 남긴 것이다. 그는 특구 개발의 비전도 제시했다.

“나진항과 선봉항, 청진항을 잘 운영하여 중국과 로씨야(러시아), 몽골에서 나오는 물동을 중계하여 주면 숱한 돈을 벌 수 있습니다. 아마 그 나라들이 짐을 우리나라 경내에 실어 나르는 값과 항에서 싣고 부리는 데 드는 노력값(노임)만 받아도 굉장할 것입니다. 여관업을 비롯한 봉사업(서비스업)을 통해서도 많은 돈을 벌 수 있습니다.”

그로부터 15년이 흐른 지난해 12월 아들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나선시(2001년 나진과 선봉을 하나로 통합해 직할시로 승격)를 처음으로 방문하고, 올해 1월 4일에는 특별시로 지정해 개발에 열을 올리고 있다. 이는 아버지의 유훈을 따르겠다는 뜻이지만 역설적으로는 이제까지 아버지의 유훈을 제대로 받들지 못했다는 것을 자인하는 것이기도 하다.

북한 지도부는 1997년까지 나선특구에 외자를 끌어오려고 노력했다. 그러나 나선특구는 김 위원장이 3년간의 ‘유훈통치’를 끝내고 1998년 실질적인 최고지도자의 자리에 오른 뒤 북한 지도부의 관심에서 멀어져 갔다. 새 최고지도자는 외자 유치보다는 내부 단속이 더 급했다.

김 위원장이 ‘선군정치’를 외치며 장거리 로켓 발사와 핵실험을 통해 국제사회와 군사·외교적 갈등을 초래하자 외국인투자가들은 하나둘 발걸음을 돌렸다. 북한 체제의 근본적이고 구조적인 문제들도 외국인투자가들의 투자의욕을 떨어뜨렸다. 중국과 베트남, 심지어 쿠바마저도 개혁과 개방을 통해 외국인투자가들을 유혹했지만 북한은 1인 독재와 폐쇄경제를 특징으로 하는 ‘우리식 사회주의’를 고수했다.

14일 공개된 북한의 새 나선경제무역지대법(올해 1월 27일 다섯 번째 개정)에는 ‘투자’라는 단어가 무려 61차례(제목과 연관단어 포함)나 등장한다. 북한 지도부가 2차 핵실험 이후 국제사회의 금융제재 속에서 한 푼의 외자라도 더 유치해야 하는 다급한 심경을 내비친 것이다.

그러나 해외자본의 대(對)북한 투자를 주저하게 만드는 안팎의 조건들은 과거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전문가들은 북한이 진정 김 주석의 유훈을 이루려면 ‘선군정치’와 ‘우리식 사회주의’라는 작은 알을 깨고 나와 국제사회의 일원이 되도록 개혁과 개방에 나서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신석호 정치부 kyl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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