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김주일]무상급식, 경쟁없는 평등으로 각인되진 않을까

  • 동아일보
  • 입력 2010년 3월 18일 03시 00분


세종시와 4대강 개발에 대한 논란으로 온 나라가 떠들썩한 와중에 초중학교 전면 무상급식 시행 문제가 6·2지방선거의 이슈로 등장하고 있다. 교육 대중교통 국민건강 의료와 관련해 거의 무상에 가까운 사회복지정책을 실시하는 서구 선진국가에서는 국민부담, 즉 조세부담과 사회보장부담이 국민소득의 절반 이상을 차지한다.

국민부담이 소득의 25% 정도인 우리나라는 복지 혜택의 폭이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 오늘날 국민부담률이 높은 서구 선진국이 복지병으로 많은 부작용을 안고 있음은 주지의 사실이다.

사회복지의 형평성과 부담 능력을 따져보자. 나는 지하철을 많이 이용하는 편이다. 소득에 상관없이 65세 이상이면 누구나 무임승차 혜택을 받는다. 도시철도 당국이 장단기 부채와 적자에 허덕임을 잘 알고 있는 터라 기초생활대상자도, 장애인도, 저소득층도 아닌데 무임 혜택을 누리면서 승차할 때마다 죄책감이 앞서곤 한다.

필자는 1960년대 후반 도쿄의 명성 있는 대학원에서 재정학을 수학할 기회가 있었다. 지도교수(후일 그 대학의 총장이 됨)가 초등학교 청소년에 대한 획일적 무상급식 제공의 문제를 언급했다. 혜택을 받은 학생들이 평등사상에 익숙해 막상 사회에 진출했을 때 부딪칠 갈등에 대한 지적이었다.

학부모의 소득수준과는 상관없이 일률적으로 똑같은 급식을 무상으로 제공받으면 청소년은 의식주 면에서 평등의식에 사로잡힐 수 있다. 그런 상태에서 직업인으로 사회에 첫발을 내디디면 무한경쟁 환경 속에서 능력과 창조성을 요구받는다. 성과 위주의 급격한 변화는 지금까지의 학교생활에서 익숙해진 의식구조와는 거리감이 크므로 청소년이 걱정된다는 강의 내용이었다.

획일적 일률적 동질의 무상급식 제공으로 청소년들이 창조적이고 경쟁적인 사고 대신 형평성과 평등성 의식에 고착될 것을 염려하던 노교수는 수십 년이 지난 작금의 일본 사회를 예견했을까. 일본의 전전(戰前)세대와 무상급식으로 성장한 전후(戰後)세대 간의 국가관과 의식구조가 그렇게도 변했을까.

근대화와 산업화 과정에서 잘나가던 일본 경제가 평등성과 폐쇄성에 물들어 경쟁력을 잃어가고 국제화와 세계화에서 고립된 원인의 일면을 청소년에게 평등성과 동질성 의식을 심어준 무상급식에서 찾는 것은 비약일까. 우리도 이를 타산지석으로 삼으면 어떨까.

김주일 한일협력위 운영위원 전 외교통상부 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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