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노조가 회사 제품의 품질을 보증하겠다”

  • 동아일보
  • 입력 2010년 3월 18일 03시 00분


금속노조 현대자동차 지부의 이경훈 지부장은 “GM의 공장 폐쇄로 미국 디트로이트 도시 전체가 폐허로 변한 것을 보고 형언할 수 없는 큰 충격을 받았다”고 털어놓았다. 이 지부장은 지난달 미국과 중국에 있는 현대차 현지 공장과 자동차 산업지대를 방문했다. 그는 귀국한 뒤 노조신문에 ‘디트로이트는 현재 2개의 공장만 운영돼 도시 기능이 마비되고 있다’며 미국의 GM이나 포드와 같은 불행한 전철을 밟지 않으려면 노사가 변해야 한다고 썼다. 그는 ‘품질 좋은 명차 생산이 곧 고용안정’이라는 기고문을 통해 도요타자동차의 리콜 사태를 계기로 현대차를 세계 제1의 명차로 만들 수 있는 노사 상생 전략을 제시했다.

LG전자 노조는 국내외 고객을 상대로 회사 제품의 품질을 보증하고, 현장에서 품질 개선이 즉각 이루어질 수 있도록 종업원을 ‘현장 경영자’로 육성하기로 했다. 박준수 노조위원장은 “도요타자동차가 글로벌 품질위기를 겪고 있지만 노조는 아무런 역할을 못하고 있다”며 미래 지향적인 노동운동을 펴겠다고 말했다. 노조가 회사 제품의 품질을 보증하는 것은 한국 노동운동사에서 처음 있는 일로 높이 평가할 만하다.

현대차 노조와 LG전자 노조는 ‘폐허가 된 디트로이트’와 ‘도요타자동차 리콜 사태’에서 값진 교훈을 얻었다. 전미자동차노조(UAW)의 무리한 요구가 디트로이트를 몰락시켰다는 것도 강렬한 깨달음이었다. 도요타자동차 사태를 보고는 노조가 품질관리에 최선을 다해야 고용이 보장된다는 진리를 터득했다. 정치파업을 일삼는 무모한 투쟁과 수만 번의 팔뚝질로는 근로자의 이익을 지켜낼 수 없음을 근로자들이 먼저 말하기 시작했다.

작년부터 민간기업 노조를 중심으로 탈(脫)정치 탈이념 바람이 불고 있는 것은 참으로 다행스러운 일이다. KT 노조를 비롯해 민노총을 탈퇴하는 노조가 줄을 잇고 있다. 현대차 노조지부장 선거에서는 15년 만에 투쟁 대신 안정과 실리를 내세운 이경훈 씨가 당선됐다. 쌍용자동차 노조는 경영정상화를 위해 쟁의행위를 일절 하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이달 초에는 현대중공업 KT 서울메트로 등 전국 40여 개 노조가 ‘새 희망 노동연대’를 출범시켜 새로운 노동운동을 모색하고 있다.

올해는 노조 전임자에 대한 임금 지급 금지의 시행 등으로 노사관계에 변화가 불가피하다. 현대차 노조와 LG전자 노조처럼 책임의식이 높은 노조가 계속 늘어나면 한국 경제의 희망을 키울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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