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광장/이종선]봄, 다시 출발선에 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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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0년 3월 19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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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경하는 선배가 안부를 물어온다. 회사 일이 너무 힘들다고 했더니, 그래서 월급을 주는 거라고 한다. “일이 재미있고 신나기만 하면 돈을 내며 다녀야지, 돈을 받으며 다니게 놔둘 리가 있나?”라고 한다. 듣고 보니 그렇다. 음악회도 영화도 놀이동산도 재미있는 일은 돈을 내고 경험한다.

똑같이 신입사원으로 들어와 점차 격차가 벌어지는 둘을 비교해 보자. 그 차이는 업무적 지식 이전에 긍정적인 열정과 태도에서 시작된다. 힘들어 미치겠다, 하기 싫어 죽겠다고 매일매일 입으로 외쳐대면 정말 미치거나 죽을지도 모른다. 반면, 그야말로 피할 수 없으면 즐기는 태도로 더욱더 힘든 문제를 끌어안고 풀어낸다면 차이는 확연히 드러난다.

나무조차 햇볕 한 줌 챙겨줄 한 개의 잎사귀도 없이 동토에 발목 박고 풍설에 팔 벌리고 서서 봄을 키우는 겨울의 나무테가 여름의 나무테보다 단단하다는 신영복 교수의 말이 생각난다. 어려움 속에서 더 큰 성장을 하는 걸 머리로는 알지만 늘 머리와 가슴 사이, 그 45cm가 문제다.

어느덧 새해도 3개월이나 지나간다. 이쯤 되면 새해 첫날 아침의 맹세가 희미해진다. 누구나 신년 계획을 세운다. 업무에 대해서든 개인적 건강이든 ‘긍정적, 최선, 열정, 최고’라는 단어로 열거했던 신년 계획은 지금도 그대로인가. 컴퓨터가 아니라 사람이기에 입력한 정보가 별도의 조작 없이 지워지기도 하지만 뭔가 제어장치를 만들어 내 안에 유지할 필요가 있다.

계절이 주는 추스름의 기회

감사하게도 그 기회를 자연이 준다. 새해 첫날을 따뜻하게 시작하지 않게 해, 차가운 바람 앞에서 냉혹한 현실을 상기하며 맹세를 하게 한다. 그리고 느슨해질 즈음 다시 봄이라는 계절의 시작으로 재출발의 기회를 준다. 꽃구경으로 맞이하기보다 이 봄만큼은 ‘또 다른 시작’다운 뭔가를 해 볼 궁리를 한다. 1년의 계획이나 소망을 좀 나누어 월별로 계획하고 진도를 관찰해 보는 일도 좋을 듯하다. 업무 달성도나 다이어트를 위해 업무 다이어리나 섭취 음식 칼로리 일지를 쓰는 알뜰함은 종종 보는데 자신의 계획에 대한 관리일지는 좀 드물다. 그러다가는 올해의 계획을 내년의 첫날에 다시 되뇌기 십상이다.

새해 계획을 유지하고 발전시킬 열정을 방해하는 것은 감정인 경우가 많다. 무엇을 이루고 무엇을 하지 않겠다는 계획 이전에 자신의 감정에 대한 관찰과 자기 응답이 중요하다고 본다. 우리는 어린 시절에 거의 일기를 썼다. 거기에는 수영장에 갔던 사실을 기록하면서 “참 재미있었다”는 표현을 썼다. 엄마에게 혼난 상황 다음에는 “억울했다”는 감정을 적어 놓았다.

지금의 내 다이어리는 어떤가. 첫 장에 새해 계획을 적어놓은 이후, 내 감정에 대한 것은 전무하다. 몇 시에 누구를 만나야 한다는 사실은 정신 차려 적어 놓는다. 업무 미팅에서 논의한 사실도 적어 놓는다. 하지만 세상에 치여서 다친 내 감정이 어떠했고 이유가 무엇인지는 술 한잔의 수다로 남에게 날려 보낸다. 내겐 분명하게 다루지 않은 멍만 가슴에 남는다.

그저 기분 좋다는 데 그쳐서는 안 되고 기분이 좋은 이유를 본인이 알아야 한다. 사물에 대한 표현은 디테일하면서도, 자신의 감정에 대해 정확히 모르는 것을 당연하게 생각하지 말아야 한다. 목표와 계획을 이루어 나가는 데 결정적인 방해 공작을 하는 감정의 변화를 애인 눈 보듯 자세히 들여다보고 귀 기울여 들어주어야 한다. 내가 세상에서 받는 상처의 종류를 알아야 한다.

사실 종이에 적어 보면 나를 우울하게 하거나 화나게 하는 상황이나 사람의 수가 그리 많지 않다. 보통 사람의 경우 열 개를 넘지 못한다. 얼마 전, 지인이 내게 손을 내밀며 세상의 사람 종류 분포도에 대해 말했다. 가장 막내인 소지를 짚으며 세상에는 이만큼의 악질들이 있게 마련이라고 했다. 약지를 짚으며 이만큼의 저질이 있다고 하더니 중지를 짚으며 이만큼의 평질, 즉 보통 수준의 평범한 사람이 있다고 했다. 검지 길이만큼의 수준 높은 고질이 있고 마지막으로 엄지만큼의 특질이 섞여 살아간다고 했다.

꽃구경보다 내 감정부터 살피길

언뜻 들으면 말장난 같은데 듣고 보니 그리 틀리지도 않은 것 같다. 사람과의 약속이 많은 바쁜 날, 피곤해하다가 우연히 그런 생각이 들었다. 일을 하느라 사람을 만나는 게 아니고 세상을 산다는 일이 바로 다양한 사람을 만나며 그들을 통해 배우고 닮아 가는 과정이라고. 그것이 자연스럽도록 주어진 게 우리 각자의 직업이 아닌가 하고 말이다. 그 장터에서 한번 실컷 즐겨보면 어떨까.

이종선 이미지디자인컨설팅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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