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나라당이 2012년까지 농산어촌과 도시 저소득층 가정의 초중학교 학생 전원에 대한 무상급식을 확대하는 대책을 18일 내놨다. 또 서민 가정과 중산층의 0∼5세 취학 전 아동에게 보육비와 유아교육비를 점차 확대해 2015년까지는 하위 70% 가정에 전액 지원한다는 계획이다. 민주당의 ‘공짜 점심’ 공세가 먹힌 데 따른 맞불작전이다.
전국교직원노동조합의 지지를 받는 김상곤 경기도교육감은 도교육위원회가 번번이 예산을 삭감하는데도 지난해 두 차례에 이어 18일 교육위에서 또 예산안을 상정했다가 삭감당했다. 무산될 걸 뻔히 알면서도 논란의 중심에 서는 것 자체가 훌륭한 선거운동임을 알기 때문에 겉으로는 반발하면서도 속으로는 웃고 있을 것이다.
6·2지방선거를 앞두고 김 교육감과 암묵적인 연대를 펴고 있는 민주당은 ‘전면 무상급식’을 핵심 공약으로 들고 나와 전국적인 이슈를 만들었다. 야5당과 전교조를 비롯한 시민사회단체는 전면 무상급식을 촉구하면서 “어릴 때 어떤 음식을 먹느냐에 따라 건강과 성격이 결정된다고 한다. 무상급식은 예산 차원을 넘어 아이들 건강의 문제이며 사회의 미래와 희망의 문제”라고 주장했다. ‘정부에서 점심 제대로 안 대줘 아이들 성격까지 비뚤어지게 할 것이냐’는 선동처럼 들린다.
정부가 돈을 펑펑 쓸 수만 있다면 점심 한 끼 못 줄 것은 없다. 하지만 제한된 국민 세금으로 정책을 펴야 하는 정부는 예산집행의 우선순위와 그 효과를 따질 수밖에 없다. 초중학교 전면 무상급식에는 2조 원, 보육·유아교육비 지원에는 1조 원 이상의 막대한 돈이 들기 때문이다.
특단의 대책이 없이 무상급식을 전면 실시하면 다른 교육이 타격을 받을 수밖에 없다. 서울시교육청의 예를 보자. 올해 총예산은 6조3158억 원이고 저소득층 무상급식 예산은 499억 원이다. 초중고교에서 무상급식을 전면 실시할 경우 10배 이상 많은 6200억 원이 든다. 다른 데서 빼오면 된다고 주장하지만 전체 예산의 78.5%(4조9604억 원)는 인건비, 경상비, 지방채 등 경직성 예산이라 손을 댈 수 없다. 나머지 21.5%(교육사업 6618억 원, 시설사업 6836억 원, 예비비 100억 원)에서 절반을 급식예산으로 대야 한다. 이렇게 되면 과학시간에 실험실습 두 번 하던 것을 한 번으로, 도서관 책 두 권 살 것을 한 권으로 줄일 수밖에 없다. 그 정도로 끝나지 않는다. 기초학력부진학생 특별지도, 무상교육대상자 교과용 도서 지원, 방과 후 학교, 수준별 영어수업, 저소득층 자녀 정보화교육 지원, 취학 전 무상교육비 지원…. 눈물을 머금고 깎아야 할 예산이 대부분 저소득층을 위한 사업이다. 결국 조삼모사(朝三暮四) 식 공약임이 분명하지만 유권자는 우선 무상급식에 더 솔깃한 것 같다.
그렇다면 서울 강남 타워팰리스에 사는 집 아이에게까지 공짜 점심 못 줘서 안달을 할 게 아니라 저소득층의 취학 전 교육기회를 넓혀 주는 것이 훨씬 더 교육적으로 의미가 있다. 월 100만 원짜리 영어유치원에 보내는 부자도 많지만 보육원이나 어린이집, 미술학원에 보낼 엄두도 못 내 마음 아파하는 부모가 훨씬 많다. 생애 출발선에서의 교육 불평등은 가난의 대물림으로 이어질 확률이 높다. 물고기 잡는 법을 가르치는 게 아니라 물고기 먹이는 일에만 급급해하는 것은 바람직한 교육도, 진정한 복지도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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