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법개혁이 백가쟁명이다. 원인제공자는 사법부 자신이다. 분명한 이념결사인 ‘우리법연구회’를 방관하는 대법원장을 비롯해서 이념에 사로잡힌 소수 법관이 사법권의 독립을 사법권의 전능으로 착각하는 그릇된 인식으로 PD수첩 무죄판결 등 사회상식에 반하는 판결을 잇달아 내놓아 논쟁에 불을 붙였다. 국회도 사법개혁 특위를 구성하는 등 의욕을 보이고 있다. 이번 기회에 의미 있는 개혁방안을 마련하여 사법제도의 혁신이 이뤄질지는 속단하기 이르다. 1993년 사법제도발전위원회를 시작으로 여러 차례의 사법개혁논의가 용두사미로 끝났던 기억을 되살리면 전망이 그리 밝지만은 않다.
그러나 이번에는 사법개혁 논란에 마침표를 찍어야 한다. 사법부와 나라의 선진화를 위해서 소중한 기회를 놓치지 말아야 한다. 무엇보다 국회가 제구실을 해야 한다. 국회는 대의정치의 정도(正道)를 벗어난 당리당략에 사로잡힌 불필요한 정쟁을 과감하게 떨쳐버려야 한다. 헌법이념에 따라 국민의 이익을 최대한 실현할 사법개혁에 여야가 따로 있을 수 없다. 사법부를 정치적인 시녀로 이용하려는 전근대적인 의식구조에서 탈피해 사법부가 제 몫을 하도록 필요한 제도를 마련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 사법부가 불신을 받는 원인부터 철저히 따져야 한다. 형평성에 어긋나는 사법부의 왜곡된 재판행태가 불신을 초래한 근원이라는 사실을 직시해야 한다. 유권무죄 무권유죄로 징표되는 편향된 재판으로 사법부는 권력과 돈 없는 서민에게는 원성의 표적이 되고 말았다. 최근에는 일부 법관의 이념성까지 재판에 덧칠해져 사법부 전체가 국민의 공분대상으로 전락했다. 사법부가 경력법조인 법관임용 확대, 재정합의제 활성화, 형사단독판사 경력 상향조정을 개혁방안으로 내놓았지만 미봉책에 불과하다는 인상을 지울 수 없다.
사법불신의 원인진단에서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것이 전관예우 관행이다. 우리 특유의 연고주의 의식에 기생하며 근절되지 않는 전관예우 관행은 불공평한 재판의 원인으로 작용한다. 퇴직한 법관이 변호사로 활동하며 짧은 기간에 많은 돈을 벌 수 있는 이유가 전관예우관행 때문이다. 법원과 검찰 주변에 법조브로커가 판치는 이유도 양형기준과 구속기준이 불명확한 상태에서 사건 담당 재판부와 연고 있는 전관변호사를 소개받으려는 사람이 좀처럼 줄어들지 않아서다. 사법개혁은 고질적 병폐를 근절하는 계기가 돼야 한다.
그러나 제도개선은 불신 해소의 필요조건에 불과할 뿐 충분조건은 아니다. 제도의 운용은 결국 사람 몫이기 때문이다. 대법원장을 비롯한 법관의 의식구조가 바뀌지 않는 한 제도개선은 면피용 장식물로 전락하고 말 것이다. 제도개선과 함께 의식구조도 개혁해야 한다. 헌법이 지향하는 자유민주주의 이념에 충실하게 사법권도 주권자인 국민의 위임을 받아 국민의 이름으로 행사되는 기본권실현의 수단에 불과하다는 헌법인식을 확고하게 가져야 한다. 그래서 사법권 독립의 가면을 쓰고 자신의 반헌법적인 정치이념을 관철하거나 재판을 통해 정치개혁을 꾀하는 엉뚱한 탈선법관이 더는 나오지 않아야 한다.
법은 상식이기 때문에 상식에 어긋나는 재판은 진정한 법일 수 없다. 위헌적인 재판에 대해 헌법소원을 인정하는 방안을 진지하게 고려해야 한다. 또 대법원장을 비롯한 대법관 등 고위 법관만이라도 퇴직한 후에 변호사 활동을 하지 말고 다른 보람 있는 인생설계를 하는 모범을 보여야 전관예우 관행에 개선의 실마리가 마련되리라고 본다. 사법부의 고위직에 있었던 그 자체를 큰 영광으로 여기면서 사법개혁을 위해서 작은 겨자씨 역할을 하려는 고위 법관을 기대하는 것은 환상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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