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행사를 몇 년 앞서 열었다면 더 좋았을 것이라는 아쉬움이 큽니다.” 스위스 바젤에서 1915개 업체가 참여한 가운데 18일부터 25일까지 열리는 세계 최대 시계보석박람회인 ‘바젤월드 2010’. 이곳에서 만난 국내 한 중견 시계업체 관계자가 20일 기자에게 던진 말이다.
그는 박람회 사상 처음으로 열리는 ‘한국의 날(Korea Day)’ 행사를 진행하기 위해 이곳을 찾았다. 이번 행사는 로만손, 아동산업, 해리메이슨코리아, 오리엔트, 에코시계, 스타일리시피플 등 6개 업체가 한국시계공업협동조합(KOWIC)과 KOTRA의 지원으로 열었다.
바젤월드에 참가한 국내 기업들이 모두 중견기업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이날 행사는 특별한 의미를 지닌다. 중견기업들이 세계적인 박람회에서 단순 판매가 아닌 브랜드를 알리는 행사를 여는 것은 흔치 않다. 이런 배경에는 근시안(近視眼)적인 시장전략으로 위기를 겪은 뼈아픈 경험이 깔려 있다.
국내 업체의 한 관계자는 “국내 시계산업이 잘나가던 1980, 90년대 마케팅과 브랜드에도 투자를 했어야 하는데 당시에는 그저 ‘하나라도 더 팔면 된다’는 생각만 했다”고 한탄했다. 그 결과 한국 시계는 고가 제품으로도 자리매김하지 못했고, 저가 제품에서는 중국에 밀리는 상황이 초래되었다는 것이다. ‘인건비 따먹기’에만 열중하고 미래를 준비하지 않다 몰락한 섬유와 신발산업의 길을 따라간 것이다.
이날 행사를 제대로 해보자는 의지는 곳곳에서 눈에 띄었다. 바이어의 눈에 잘 띄게 전시회 개막식이 열린 장소를 행사장으로 빌렸다. 김종일 주스위스대사와 조병휘 KOTRA 구주지역본부장도 각각 취리히와 독일 프랑크푸르트에서 날아와 행사장을 끝까지 지켰다.
행사장을 찾은 외국인 바이어는 예상보다 적은 30여 명에 그쳤다. 하지만 국내 업체들은 실망보다는 첫발을 내디뎠다는 희망에 부풀어 있다. 에코시계 고영곤 대표는 “당장 성과가 나타나지 않더라도 이런 이벤트는 국내 업체들의 이미지를 높이기 위해서 꾸준히 열려야 한다”고 말했다.
삼성전자, LG전자, 현대자동차 같은 대기업들이 오늘날의 위치에 오른 건 1990년대 말부터 기술 못지않게 고급스러운 브랜드 이미지 구축에 신경 쓴 결과다. 조금 늦은 감이 있지만 이번 행사는 국내 중견기업들도 중장기적 차원의 브랜드 관리와 마케팅의 중요성을 인식하기 시작했다는 것을 보여주는 좋은 사례다. ―바젤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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