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설수설/권순택]룸살롱식 국제결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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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0년 3월 22일 03시 00분


‘베트남 숫처녀와 결혼’ ‘절대 도망가지 않습니다’ ‘초혼 재혼 장애인 포함 100% 성사’ ‘비용은 후불 카드 결제’ ‘신부 입국 안 될 때 전액 환불’. 지금은 거의 사라졌지만 국제결혼 중개업자들이 전국 곳곳에 내걸었던 낯 뜨거운 광고 문구들이다. 베트남 캄보디아 같은 동남아 국가에서는 한국인 남성 1명이 수십 명의 여성을 놓고 신붓감을 고르는 이른바 ‘룸살롱식(式) 맞선’까지 등장했다. 한국의 퇴폐 문화를 흉내 낸 것이다. 맞선에서 탈락한 수십 명의 여성과 그 가족, 나아가 캄보디아 국민의 자존심에 상처를 주는 무례다.

▷캄보디아 정부가 캄보디아인과 한국인의 결혼을 잠정 중단시켰다. 캄보디아에서는 국제결혼 상대의 약 60%가 한국인이다. 캄보디아에서 집단 맞선은 불법이다. 코리안 드림을 찾아 한국인과 결혼하려는 외국인 여성들의 마음에 지울 수 없는 상처를 내는 행위다. 한국도 그들 나라처럼 가난한 시절이 있었다는 점을 생각하면 차마 할 수 없는 짓이다. 알선업자들이 한국 남성들의 개인 신상이나 재산을 거짓으로 소개하거나 과장해 이혼과 가정불화로 이어지는 사례도 만만찮다. 나라망신이다.

▷한국은 외국계 주민이 100만 명을 넘어섰을 정도로 다문화 다민족 사회로 급변하고 있다. 지난해 전체 결혼의 13.6%에 해당하는 4만3121건이 국제결혼이었다. 아기 울음소리가 사라졌던 농촌 지역은 외국인 며느리들이 아니면 공동체의 유지조차 어려울 정도로 국제결혼이 보편화했다. 그런데도 순혈(純血)주의 의식이 강한 우리 사회에는 결혼 이주 여성들에 대한 편견이 여전하다. 보건복지부의 다문화가족 실태조사에 따르면 여성 결혼 이민자의 34.8%가 ‘외국인이라는 이유로 차별 대우를 받은 경험이 있다’고 응답했다.

▷한국 여성들이 농촌 총각들과 결혼을 기피해 국제결혼은 계속 늘어날 것으로 전망된다. 외국인 이주자들이 한국에 뿌리를 내리려면 우리가 마음의 문을 열어야 한다. 다문화가정과 외국인에게 닫혀 있는 사회는 글로벌 시대에 적응하기 어렵다. 신부를 데려올 때도 예의를 갖추고, 데려와서도 한국인과 똑같은 며느리로, 아내로 대접해야만 외국인 여성들이 낯선 땅에 와서 정착할 수 있다.

권순택 논설위원 maypol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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