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칼럼]송평인/공책 살 돈은 줘도 급식비는 받는 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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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0년 3월 22일 03시 00분


유럽에서 프랑스와 영국은 학교 급식제도를 발전시켜온 대표적 나라다. 두 나라 모두 유료급식이 원칙이며 무료 혹은 무료에 가까운 급식은 예외적인 경우다. 독일은 최근까지만 해도 오전 수업만 하는 나라여서 급식 문제는 생기지 않았다.

프랑스 교육의 아버지 쥘 페리는 1881년 최초로 무료 의무교육 제도를 도입했으나 급식은 미처 생각하지 못했다. 그는 점심시간에 교실 문을 닫고 아이들은 집에 가서 밥을 먹고 오는 학교를 상정했다. 그러나 시골에서는 학교가 집에서 멀다는 이유로, 도시에서는 부모가 모두 직장에 나가 밥을 챙겨줄 사람이 없다는 이유로 급식의 필요성이 제기됐다. 이로부터 부모가 누군가 자기 대신 점심을 마련해주는 대가로 돈을 대는 유료급식 제도가 등장했다. 이렇게 무료교육과 유료급식은 제도적 짝이 됐다.

파리의 경우 초등학교 급식은 구(mairie)별로 하나씩 있는 ‘케스 데제콜(Caisse des Ecoles)’이란 곳에서 관리한다. 케스 데제콜은 구내 전체 급식비 중 시 지원금을 뺀 금액을 급식 희망학생 수로 나눠 1인당 평균비용을 계산하고 소득에 따라 어느 가정에는 평균 이상으로, 어느 가정에는 평균 이하로 분담금을 책정해 전체 수지를 맞춘다. 최저 등급 가정이 내는 급식비는 한 끼에 0.15∼0.20유로로 거의 무료에 가깝다. 가구당 평균으로 치면 한 끼에 3.66유로를 낸다는 조사결과가 나와 있다.

파리의 한 공립초등학교에 다니던 우리 아이는 지난해 평균에 가까운 등급을 받아 두 달에 한 번씩 약 100유로(약 16만 원)를 냈다. 방학기간 두 달을 빼면 1년에 500유로(약 80만 원) 정도를 낸 것이다. 최고 등급은 한 끼에 약 4.5유로로 1년에 약 750유로(약 120만 원)를 낸다는 계산이 나온다. 프랑스는 학비가 없고 교과서 등 교재도 무료로 제공하며 학기 초에 200∼300유로씩 학용품 살 돈까지 대주는 나라지만 급식비만큼은 예외다. 급식은 무료교육의 일부가 아니라는 것이 그들의 생각이다.

사실 무엇을 먹을지 결정하는 것은 개인적 영역에 속한다. 프랑스에서 점심시간은 교사의 책임영역 밖이다. 학생은 점심시간에 모두 교실 밖으로 나가야 한다. 교사의 책임 아래 교실에서 전 학생이 급식을 하는 모습은 프랑스에서는 상상할 수 없다. 학생들은 학교 식당에서 급식을 받아먹을 수도 있고 집에서 점심을 먹고 올 수도 있다. 지금도 적지 않은 학생이 점심시간에 자기 집으로 가 밥을 먹고 다닌다. 급식을 안 하는 학생이 초등학생 2명 중 1명, 중고교생 3명 중 1명꼴이다. 급식은 선택사항이다. 의무사항이 아닌 것은 소득수준에 따라 돈을 내고 제공받아야 한다는 것이 프랑스 법 정신이다.

프랑스나 영국에서 무료나 무료에 가까운 급식이 나온 것은 가난한 아이들의 영양 상태가 사회 문제가 됐고 이를 해결하기 위해 도입된 것이다. 시대에 따라 비중이 때로는 컸고 때로는 작았지만 무료급식의 영역은 늘 유료급식의 예외였다. 영국의 경우 현재 약 15%의 학생이 무료급식을 받고 있다. 프랑스에서 최저등급은 수입이 최저생계비 수준인 사람들에게나 적용된다.

무료급식의 전면화는 전통적인 복지국가인 프랑스나 영국에도 없는 일이다. 이들 나라가 안한다고 한국이 하지 말라는 법은 없다. 그러나 무료교육의 이념을 제대로 실현하기 위해 돈을 써야 할 곳이 수두룩한데 최우선순위를 무료급식에 둬야 할 것인지는 생각해볼 일이다.

송평인 파리 특파원 piso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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