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기예보. 그것이 얼마나 시민에게 많은 기대와 편의를 주는가? 과학은 반드시 다른 사람이 어떻게 할 수 없는 편의를 가진 뒤에야 신성한 것이 되고 존경을 받게 되는 것인데. 경성측후소의 천기예보는 어찌된 일인지 맞지 않는 날이 맞는 날보다 오히려 많아서 도리어 맞는 것이 예외라는 말까지 듣는 중이다. 적어도 경성은 조선의 수부(首府)인 이상에 천기예보를 좀 정확히 보도하여야 시민의 편익과 과학의 권위를 보장할 것이 아닌가?’ 이 글은 ‘안맞는 천기예보, 경성측후소의 천기예보는 도모지 신용할 수가 없다’라는 제목으로 보도된 1923년 6월 16일자 동아일보의 기사다.
‘여름 장마철에 족집게 예보로 칭찬을 받았던 기상청이 겨울 눈 예보가 잇달아 빗나가면서 곤혹스러워하고 있다. 2.6cm가량의 눈이 내린 지난해 12월 27일에는 눈이 시작되기 불과 두어 시간 전까지도 눈 예보를 하지 못해 비난을 받은 데다 4일에는 25.8cm라는 기록적인 폭설을 전혀 예상하지 못했기 때문.’ 이는 ‘10cm가 25.8cm로, 또 빗나간 예보’라는 제목의 2010년 1월 5일자 동아일보 기사의 일부다.
예나 지금이나 세월이 아무리 흘렀어도 기상청의 일기예보는 100% 완벽하지 못하고 빗나갈 때가 있다. 자신이 하는 일을 딱딱 맞아 떨어지게 못하니 기상청은 바보라 할 수도 있겠으나 지난해 예보정확도가 선진국 수준인 90%를 넘었으니 바보치고는 똑똑한 편이다. 앞으로도 일기예보는 빗나갈 때가 또 나올 것 같으니 영원한 바보가 될지도 모르겠다. 언제, 어느 곳에, 얼마큼 비나 눈이 내릴지 정확히 예측하는 일은 인간이 적어도 수십, 수백년 안에도 해결하지 못할 영원한 과제이기 때문이다.
지구를 둘러싼 공기는 범위가 너무 넓은 데다 손에 잡히지도 보이지도 않아 앞으로 어떻게 변할지 예측은커녕, 현재 어떤 상태인지조차도 제대로 파악할 수가 없는 상대다. 상대를 알고 나를 알면 백전백승이라 했다. 하지만 알아야 할 상대가 이 나라 저 나라 넘나들고, 땅과 바다 위를 휘저으며 하늘을 떠다니는 공기이니 제대로 알 묘수가 없다. 상대를 제대로 모르는 ‘나’ 기상청에게 백전백승은 어림없는 일이 된다. 하지만 작년 기상청의 예보정확도가 92%였으니 ‘백전 구십승’ 정도의 성과는 내고 있다.
이 나라 저 나라 넘나드는 공기를 상대하기 위해 1950년 세계기상기구(WMO)라는 국제기구가 탄생했고 우리나라는 1956년 가입했다. WMO가 설립되던 1950년 3월 23일, 이 기구가 할 일을 담은 협약이 만들어졌다. WMO는 이날을 ‘세계 기상의 날’로 정했다. 각 나라 기상청은 이날 일기예보의 어려움을 되새겨 보고 일기예보의 중요성을 국민에게 홍보한다.
지난겨울 북극은 이례적으로 따뜻했다. 이 현상은 극지방 찬 공기의 울타리 역할을 하는 상층의 강풍대를 남쪽으로 처지게 해, 이른바 북극진동 때문에 유럽 북미 동아시아 쪽으로 한파를 몰고 왔다. 같은 시기에 적도 부근의 동태평양에서는 바닷물의 온도가 높았고 이 원인으로 서태평양에서는 남쪽의 덥고 습한 공기가 북상해 북극에서 내려온 찬 공기와 부딪쳐 폭설이 내렸다. 남쪽 공기의 움직임에 대응하는 북쪽의 찬 공기 세력은 아직까지 약해지지 않고 가끔씩 남쪽으로 힘을 뻗치니 올 3월은 꽃샘추위가 늦게까지 이어지고 눈비가 잦다.
이처럼 날씨는 이쪽의 문제가 엉뚱하게 저쪽에서는 다른 현상으로 나타나므로 예측이 어렵다. 그러기에 기상분야에서는 이념 종교 빈부를 따지지 않고 서로 협력한다. WMO 설립 60주년을 맞아 바보 기상청이 더욱 분발할 것을 다짐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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