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명숙 전 국무총리의 5만 달러 뇌물수수 혐의에 대한 1심 재판이 갈수록 정치 바람을 타고 있다. 여야는 4월 초로 예상되는 판결 선고가 6·2지방선거에 미칠 정치적 영향을 계산하느라 분주하다. 한 전 총리는 야권의 유력한 서울시장 단일 후보로 거론되고 있어 재판 결과가 지방선거 판도에 상당한 영향을 줄 것으로 보인다. 민주당 등 야권은 유무죄 결과에 상관없이 선거 승리를 위해 계속 현 정권의 ‘정치 공작’으로 몰려는 기세이다. 한나라당은 악재로 작용할까봐 내심 긴장하고 있다.
친노(친노무현)그룹은 그동안 재판이 유리하게 전개된다고 보는 듯하다. 뇌물증여 혐의로 기소된 곽영욱 전 대한통운 사장이 총리 공관에서의 돈 전달 정황과 대화 내용에 관한 진술을 번복하고, 이에 따라 재판부가 검찰에 공소장 변경을 권고한 것에 기대를 걸고 있다. 곽 씨는 검찰 조사 때 “돈 봉투를 (직접) 건네줬다”고 했다가 법정에서는 “의자에 놓고 나오며 ‘죄송합니다’라고 했다”고 번복했다. 증인인 전직 총리 경호원도 오찬이 끝난 뒤 총리가 맨 나중에 나오는 일은 없었던 것처럼 말을 바꿨다. 어제 총리 공관에서는 2시간여 동안 재판부의 현장검증이 있었다.
검찰이 경호원을 위증 혐의로 조사하면서 장외(場外) 공방도 벌어지고 있다. 변호인단은 그제 기자회견을 열고 “증인들을 위축시켜 재판에 영향을 미치려는 수사권 남용”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검찰은 경호원이 변호인단 및 한 전 총리의 전직 비서관과 여러 차례 접촉한 사실이 있어 위증 여부를 조사한 것이라고 해명했다. 증인이 피고인 측과 접촉한 뒤 법정에서 거짓진술을 하게 됐거나, 검찰이 압박감을 주기 위해 증인을 수사하는 것이라면 어느 쪽이든 재판의 실체적 진실 발견을 방해하는 행위다.
친노세력은 지난해 12월 한 전 총리가 검찰 조사에 응하기 전부터 이 사건을 ‘정치 공작’으로 몰고 갔다. 그리고 ‘이명박 정권·검찰·수구언론의 정치공작 분쇄 및 정치검찰 개혁을 위한 공동대책위원회’를 만들었다. 이 사건은 한 전 총리가 과연 곽 씨에게 공기업 자리를 마련해주면서 돈을 받았느냐, 안 받았느냐의 진실에 관한 문제이다. 할 말이 있으면 법정에서 하면 된다. 장외에서 요란하게 정치 공세를 폄으로써 간접적인 선거운동을 하는 것은 옳지 못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