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광장/김인규]이명박-박근혜를 위한 ‘게임의 법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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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0년 3월 24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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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이 왔다. 하지만 이명박 대통령과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의 관계는 여전히 겨울이다. 박 전 대표가 이 대통령의 특사로 방문했던 나라의 정상이 우리나라에 오면 그는 늘 청와대 만찬에 초대받았다. 그런데 라르스 라스무센 덴마크 총리를 위한 12일 만찬에는 청와대가 세종시 문제 때문에 의도적으로 그를 초청하지 않았다고 한다.

이 대통령과 박 전 대표는 사이 나쁜 부부를 연상시킨다. 부부관계는 일종의 게임이다. 서로 화합하면 거문고와 비파의 좋은 화음을 뜻하는 금슬상화(琴瑟相和)의 윈-윈(win-win)게임이 되지만, 자칫 잘못하면 서로에게 상처만 입히는 금슬부조(不調)의 루즈-루즈(lose-lose)게임이 되기 쉽다.

같은 부부싸움이라도 2년여 전의 인기 드라마 ‘엄마가 뿔났다’에서 장미희-김용건 부부는 금슬상화를 이루지만, 영화 ‘장미의 전쟁’에서 캐슬린 터너와 마이클 더글러스 부부는 금슬부조의 극단인 죽음으로 치닫는다. 게임이론으로 설명하면, 장-김 커플의 게임은 ‘백년해로’라는 반복게임이지만 터너-더글러스 커플의 게임은 ‘이혼’이라는 일회성(一回性)게임이라 그렇다.

상대를 믿지 못하는 일회성게임은 루즈-루즈로 끝난다. 게임이론에서는 이것을 ‘죄수들의 딜레마’라 부른다. 경찰이 자동차 절도범 두 명을 체포했다. 이들은 어린이 유괴혐의도 받고 있다. 경찰은 둘을 격리 신문하며 다음 세 가지 가능성을 말해 준다. ①둘 중 하나가 배신해 유괴를 자백하면 그는 즉시 석방되지만 다른 용의자는 13년형 ②둘 다 부인(否認)하면 절도죄로 각각 1년형 ③서로 배신해 둘 다 자백하면 각각 8년형을 받는다.

상대 못 믿으면 루즈-루즈

두 용의자가 서로를 믿고 유괴를 부인한다면 윈-윈이 되는 ②의 1년형이 가능하지만 일회성게임에서는 자신만 석방되는 배반의 ①을 서로 추구하다 결과적으로는 최악인 ③의 8년형으로 끝나게 된다. 이것이 죄수들의 딜레마다. 이런 현상은 미소 군비(軍備)경쟁에서부터 최근의 대형마트 간 가격전쟁에 이르기까지 현실에서 자주 관찰된다.

하지만 죄수들의 딜레마게임도 반복되면 서로 협력해 배신의 딜레마를 극복하고 윈-윈이 되는 ②의 1년형을 추구하려는 인센티브가 생겨난다. 그러기 위해서는 상대가 배반하지 않을 것이라는 믿음이 필요하다. 만약 신뢰가 쌓여 게임이 비(非)협조적에서 협조적으로 바뀌면 이 게임의 틀을 뛰어넘어 더 큰 이득을 창출하는 것도 가능하다.

이 대통령과 박 전 대표를 죄수에 비유해 미안하지만, 그들은 2007년 8월 한나라당 대선후보 경선 이후 2008년 4월 18대 총선의 ‘공천 학살’을 거쳐 지금의 세종시 이슈에 이르기까지 죄수들의 딜레마 중 전형적인 ③의 상황에 빠져 있다. 이 문제를 풀려면 이-박보다 더 심하게 경선에서 싸웠던 미국의 버락 오바마 대통령과 힐러리 클린턴 국무장관이 어떻게 이를 극복했는지 살펴볼 필요가 있다.

오바마는 힐러리와의 게임이 일회성이 아닌 반복게임이라는 것을 알았다. 반복게임의 신뢰 구축을 위해서는 승자가 먼저 손을 내밀어야 한다는 것도 인식했다. 오바마는 최고 요직인 국무장관직을 힐러리에게 제안해 그의 화답을 이끌어냄으로써 윈-윈의 ②를 거쳐 최상의 게임을 만들어가고 있다. 이런 노력 덕분에 21일 미 건강보험개혁 ‘100년 숙원’도 풀 수 있었다.

이에 비해 이 대통령은 박 전 대표와의 게임을 2007년 경선으로 끝난 일회성게임으로 생각했고 박 전 대표는 여기에 동의하지 않았다. 그러다 보니 지금까지 죄수들의 딜레마를 극복하지 못하고 있다. 박 전 대표의 협력을 얻지 못한 이 대통령은 국회 입법을 통한 제도개혁을 거의 못하고 있다.

오바마-클린턴이 보인 윈윈의 묘

제도개혁이 어려워서인지 이 대통령은 재정지출과 저금리정책을 통한 경기부양에 치중하고 있다. 그러나 포퓰리즘적 재정확대정책이나 저금리정책은 마약과 같다. 지금 당장은 달콤해 국민의 인기를 끌지만 그 후유증은 결국 국민에게 돌아간다. 현 정부 들어 늘어난 정부 및 공공기관 부채가 벌써 150조 원을 넘어섰다니 재정 건전성 악화에 따른 후유증이 크게 염려된다.

이 대통령이 성공한 대통령이 되려면 포퓰리즘의 유혹을 뿌리치고 국가 선진화를 위한 제도개혁에 매진해야 한다. 그러려면 이 대통령과 박 전 대표는 지금이라도 오바마-힐러리처럼 윈-윈을 위한 ‘게임의 법칙’을 배울 필요가 있다.

김인규 객원논설위원·한림대 교수·경제학 igkim@hallym.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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