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7년 대선 때 노태우 후보가 새만금 개발을 공약한 지 23년이 됐다. 반대가 줄기차고 무진장하더니 지금은 ‘바다 위의 푸른 신화’니 ‘글로벌 신경제의 중심’이니 ‘즐거움이 흐르는 길’이니, 정부가 자랑해도 악을 쓰며 덤비는 사람이 안 보인다. 오랜 세월의 끈질긴 반대에 따른 지연비용만 줄였어도 세금을 몇 조 원쯤 아낄 수 있었을 것이다.
국민의 전면적 합의는 불가능
김영삼 정부는 임기 4, 5년차이던 1996년과 97년 금융개혁, 노동개혁, 그리고 한보 기아 등 부실기업 처리에 매달렸다. 하지만 김대중 총재가 이끌던 야당 ‘새정치국민회의’와 노조세력의 집요한 반대를 뚫지 못해 개혁에 실패했다. 그때 제대로 개혁했더라면 환란(換亂)의 국민 시련도 덜했을 가능성이 있다. YS 다음 대통령이 된 DJ는 비슷한 개혁을 위해 훨씬 비싼 값을 치렀다. 물론 지갑을 연 것은 정치인들이 아니라 국민이다.
‘반대의 비용’을 납세자들이 덤터기 쓴 사례는 이 밖에도 셀 수 없지만 ‘교훈을 살려야 한다’고 해봐야 그때뿐이고 건망증을 못 이긴다. 어느 정부나 ‘반대 없는 정책’을 꿈꾼다면 순진한 몽상이다. 균형 잡힌 시시비비(是是非非)보다 흑백논리가 파괴력 있고, 불복(不服)이 정의처럼 대접받는 사회라 더욱 그렇다. 시대착오적 이념, 거의 고착화된 정파성(政派性)에다 종교까지 가세하니 이른바 국민적 합의는 불가능하다.
하기야 여러 선진국 정부도 반대의 암초에 부닥치는 일이 많다. 그걸 넘어서지 못하면 결국 ‘지는 정부’가 되고 만다.
프랑스는 1992년 유럽연합(EU) 통합 조약인 마스트리히트 조약의 비준을 위한 국민투표를 앞두고 국론분열이 심각했다. 당시 75세이던 프랑수아 미테랑 대통령은 소르본대 강당에서 벌어진 TV 공개토론에 직접 나섰다. 토론은 3라운드까지 진행됐다. 미테랑 대통령은 1회전에선 무작위로 선정된 일반인 14명과 1 대 14로, 2회전에선 조약에 반대하는 저명 언론인 3명과 1 대 3으로, 3회전에선 조약 반대운동을 이끌던 필리프 세갱 하원의원과 맞대결로 토론했다. 프랑스 국민은 3시간에 걸친 토론을 지켜보면서 미테랑 대통령의 철학, 정책, 신념, 지식, 인격, 리더십을 읽었다. 토론 직전에는 찬반 여론이 팽팽했으나 2주 뒤 실시된 국민투표에선 지지가 훨씬 많았다.
미국이 제2차 세계대전 직후 조지 마셜 국무장관 주도로 펼친 서유럽 16개국에 대한 원조 프로젝트, 즉 마셜 플랜은 미국의 대표적인 외교 업적으로 꼽힌다. 그러나 이 구상이 처음 나왔을 때 대다수 미국인은 물론이고 의회도 회의적이었다. 이에 장관들이 총출동해 각 주(州)를 돌며 마셜 플랜의 의미와 효과를 설명하는 ‘미국 역사상 가장 긴 캠페인’을 전개했다. 또 공화당과 민주당 지지자들이 고루 참여하는 시민위원회가 결성돼 문학 책자 신문기고 등을 통한 마셜 플랜 지지활동을 벌였다. 행정부는 유럽으로 의원들을 데려가 폐허 같은 현실을 눈으로 보게 하고, 의회는 토론과 청문회를 충분히 했다. 그 결과가 압도적 의회 통과, 엄청난 대중 지지, 20세기 최대의 외교 성공이었다.
정책 성공의 5가지 원리 통할까
미국 컨설팅회사 딜로이트와 하버드대 케네디스쿨의 두 연구원이 미국 정부가 60여 년간 추진한 75건의 주요정책을 분석해 5가지 성공 원리를 찾아냈다. 그 내용이 21일자 워싱턴포스트에 실렸는데 첫째는 ‘리더가 이데올로기와 전문가집단의 경계를 넘어 세상을 다르게 보는 사람들과도 의견을 교환하는 것’이었다. 1996년 빌 클린턴 대통령이 복지개혁을 하면서 공화당 의원들과 함께 작업한 것이 주요 사례로 꼽혔다. 둘째는 ‘의도가 좋다는 함정에 빠지지 말고, 이미 현실에서 성공한 방식을 모방하는 것’이고, 셋째는 ‘대대적인 국민교육(마셜 플랜이 그 본보기)’이다. 넷째는 ‘정치인이 확신을 갖고 말하는 것’이고, 다섯째는 ‘정치와 관료를 연결하는 가교 역할자(bridger)가 나서는 것’이다. 국민의 신망이 두터운 전문가 등이 이에 속한다.
지금 우리나라는 이런 원리조차 통할 것 같지 않은 정치사회적 토양이지만 그럴수록 정부의 국민 설득노력은 중요하다. 우리 국민은 냉소적이기도 하지만 진실과 진정성에는 화끈하게 동조하는 일면도 있다. 우선은 정책 반대자들을 설득하려는 국정 주역들의 열정이 긴요하고, 그 다음은 현안의 뿌리부터 잎사귀까지 꿰뚫는 전문성이 필요하다. 반대자들이 실체적 진실과는 다른 감성적 선동적 언어를 구사하며 정책을 공격하는 데 대해 이를 논파할 열정도 전문성도 없다면 다수 국민을 응원자로 만들기 어렵다.
장차관, 청와대 비서 등 정책의 책임을 분담해야 할 핵심주체들이 복지부동(伏地不動)하거나 자기 보신에 급급한 것은 개탄스러운 일이다. 그렇지만 국정 최고책임층은 공무원들의 열정, 충성심, 희생정신 결여가 무엇에서 비롯됐는지 다각적으로 통찰할 필요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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