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첨단기술 융합’ 발목 잡는 낡은 법령 빨리 고치라

  • 동아일보
  • 입력 2010년 3월 27일 03시 00분


LG전자는 2004년 혈당 측정과 투약 관리가 가능한 당뇨폰을 개발했으나 의료법상 의료기기로 분류돼 인허가를 받아야 하는 부담 때문에 사업을 포기했다. 원격의료 서비스사업을 추진하던 대기업은 의료법상 원격의료에 대한 제약이 많다는 것을 뒤늦게 발견하고 사업을 접었다. 지게차와 트럭을 결합한 지게트럭차를 개발한 운송장비회사도 기준이 없다는 이유로 4개월 이상 제품 승인이 지연돼 60억 원 이상 손해를 봤다.

스마트폰 스크린골프 원격의료같이 서로 다른 분야의 기술을 섞은 새 제품이 쏟아져 나오고 있다. 그러나 법령과 기준이 따라가지 못해 제품이 시장에 나오지 못하거나 아예 생산을 포기하는 일이 빚어진다. 대한상공회의소가 국내 1346개 회사를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조사 기업의 41%가 융합제품의 사업화 과정에서 시장 출시가 지연되는 경험을 했다. 대기업 4곳 가운데 1곳은 제품 개발을 완료해 놓고도 적용 기준이 없어 인허가가 거절되거나 지연됐다고 답변했다. 융합제품과 산업의 활성화를 위해선 별도의 지원법령이 필요하다는 응답도 91.5%나 됐다.

서로 다른 기술과 산업 간 융합은 미래 성장동력을 창출하기 위해 필수적이다. 우리가 경쟁력을 보유한 조선 철강 자동차 반도체 같은 산업과 정보기술(IT) 생명공학기술(BT)을 결합해야 전 산업의 동반 성장을 이끌어 낼 수 있다. 자동차만 해도 전체의 20% 이상이 IT로 구성돼 있어 자동차산업 발전을 위해 IT의 접목이 필수적이다. 딜로이트컨설팅은 세계 융합시장이 급신장해 2013년에 20조 달러에 이를 것으로 전망한다.

융합제품의 개발에 애로를 겪는 것은 개별 산업별로 지원했던 기존 산업발전의 틀이 바뀌지 않았기 때문이다. IT를 비롯해 BT, 나노기술(NT) 같은 신기술의 발달로 산업 간 융합화가 진전되고 있으나 규제기관이 중복돼 관련 법령과 기준이 신속히 마련되지 못하는 실정이다. 노무현 정부 시절 방송통신 융합서비스를 받을 수 있는 인터넷TV(IPTV)의 상용화가 지연된 것도 그런 사례이다.

미국은 2002년부터 ‘인간 수행능력 향상을 위한 융합기술 정책’을 추진하고 있다. 2004년 유럽은 ‘유럽 지식사회를 위한 융합기술 정책’을, 일본은 ‘신산업 창조전략’을 수립했다. 우리 정부도 개별법의 사각지대를 메우고 산업융합을 촉진하는 법을 서둘러 제정할 필요가 있다. 관련 정부 부처부터 기술융합 추세에 맞추어 시스템과 자세를 바꾸는 일도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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