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종동료에 면목없다” 생존장병들 불면-악몽
자책감 느끼지 않도록 “본분 다했다” 보듬어줘야
“죄인은 할 말이 없습니다.”
천안함 침몰 사고 생존자 52명이 있는 경기 성남시 국군수도병원에서 만난 생존자 가족들의 대답은 한결같았다. 이들의 얼굴에서 하마터면 잃을 뻔했던 아들을 되찾았다는 기쁨은 찾아보기 힘들었다. 생존자들도 하나같이 “실종자 앞에서 면목이 없다”는 반응을 보였다고 가족들은 전했다. 생존자들은 죄책감에 가족 면회조차 자제하는 분위기였다. 자신만 살아 돌아왔다는 생각에 불면증을 겪거나, 작은 소리에도 사고 당시 폭발음이 떠올라 놀라는 이도 적지 않다고 한다.
‘살아남은 자의 슬픔’은 너무나 자연스러운 감정이다. 수년간 동고동락하던 실종자에 대한 애정이 클수록 아픔도 깊을 것이다. 하지만 살았다는 데 죄책감을 느낄 이유는 없다. 생존자들은 당당하게 병역의 의무를 다하다 사지(死地)에서 용감하게 탈출한 사람이다.
가족들의 증언을 들어보면 실제로 탈출 과정에서 동료애를 발휘한 사례가 적지 않다. 서로의 몸을 마사지해주며 구조선이 올 때까지 기다렸던 선후임과 눈이 나쁜 부하를 위해 자신의 안경을 벗어준 간부도 있었다. 구조과정에서 잘못을 한 부분이 있다면 문책해야 마땅하지만 자신의 역할을 다한 승조원들에게 동료를 구하지 못한 책임을 물을 수는 없는 일이다.
연세대 심리학과 황상민 교수(48)는 “우리 사회는 전장에서 살아왔다는 게 얼마나 영웅적인 것인지 알아주지 않는 분위기”라고 했다. 그는 “해군이 함장을 유가족들 앞에 세워 상황보고를 하게 한 건 전장에서 죽을 뻔한 사람을 다시 전장으로 내모는 것과 같다”며 “이는 언제 죽을지도 모르는 군인에 대한 예의가 아니다”라고 말했다. 천안함 생존자들의 자책감을 덜어주는 사회 분위기가 아쉽다는 얘기다.
2002년 제2차 연평해전에서 가까스로 살아났다가 이번에 실종된 박경수 중사(30)도 생환 뒤에 죄인 취급을 하는 이상한 분위기와 죄책감에 시달렸고, 신경정신과 치료까지 받으며 배에 오를 때마다 청심환을 먹었다고 한다.
사고 원인을 밝혀내고 책임자들의 공과를 철저히 규명해야 하는 것은 당연하다. 하지만 단지 살아났다는 것 때문에 생존자들에게 평생 멍에를 씌워서는 안 된다. 박봉과 열악한 여건에서 근무하는 군인들을 존경하고 예우하는 문화가 아쉽다. 미국에서 이런 일이 벌어졌다면 모두 경의를 표하고 영웅으로 만들었을 것이다. 이번에 구조된 생존자들에게 “당신들은 본분을 다한 영웅”이란 격려의 박수가 필요한 이유다. 더는 ‘제2의 박 중사’가 나오지 않기를 간절히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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