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광장/곽준혁]오바마가 보여준 ‘공존의 리더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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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0년 4월 1일 03시 00분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세계인의 마음을 다시 사로잡고 있다. 세금과 관련된 쟁점이 여전히 불씨로 남아있지만 100년을 끌어온 건강보험개혁안을 가결시킨 리더십에 세계인이 큰 찬사를 보낸다. 당내 반대파 의원을 전용기에 태워 설득하고 그의 일거수일투족을 문제 삼는 언론과도 적극적으로 대면하며 결국 등을 돌려버릴 공화당 의원과도 장시간에 걸쳐 토론한 열정에 세계가 다시 주목하고 있다.

사실 스콧 브라운이라는 정치 신예에게 50년 민주당의 아성이 무너진 두 달 전만 해도 쉽게 예측하지 못했던 정치적 승리다. 상원에서 민주당은 의사진행방해를 저지할 수 있는 의석을 확보하지 못했고 상원이 지난해 수정해서 통과시킨 개혁안에 대한 하원 민주당 의원들의 반발은 예상보다 심각했다. 낙태에 반감을 가진 민주당 의원들의 공공연한 개혁안 반대도 큰 부담이었다. 이런 맥락에서 국내외 언론은 이번 사건을 설득의 정치가 가져온 극적인 역전승이라고 부르고 있다.

그러나 정치적 설득은 그리 단순하지 않다. 적대적 관계의 사람에게까지 다가가는 마음, 자신의 생각을 강요하기보다 반대자의 의사를 들어주는 태도, 상황에 맞게 수정된 원칙을 제시하는 순발력만으로 정치적 설득이 성공할 수는 없다. 갈등상태의 쌍방 모두가 상대를 설득했다고 믿는 경우가 잦고 말로는 납득되었더라도 결과는 반감으로 나타나는 경우도 있다. 정작 설득의 달인이라고 칭송을 받는 오바마 대통령도 공화당 의원에게서는 하나의 찬성표도 얻어내지 못했다. 초당적 투표가 잦은 미국 의회에서 그의 정치적 설득도 절반은 실패한 셈이다.

건보 개혁, 극적인 정치 역전승

이런 맥락에서 볼 때 성공적인 정치적 설득은 두 가지 요소의 신중한 결합이다. 첫째는 말을 하는 기술이다. 수사학에서는 ‘설득의 힘(vis persuadendi)’이라고 부르는데 궁극적으로는 말로써 상대의 동의를 확보하는 능력을 의미한다. 이때 설득은 상대방을 수긍시키는 수단 그 이상이 아니고 성공적인 설득을 위해 필요한 덕목은 다름 아닌 논리(logos)다. 즉 자신이 하고자 하는 말을 정연하게 전달하고 상대의 허점을 정확하게 지적하면서 스스로의 입장을 강화하는 능력이 무엇보다 중요한 것이다.

둘째는 말을 통해 상대방과 관계를 구성하는 능력이다. 수사학에서는 ‘잘 말하는 지식(bene dicendi scientia)’이라고 한다. 논리적 설득이 말싸움의 승리에 그칠 수 있다면 구성적 설득은 상대방이 자신과 함께 미래를 꿈꾸는 동반자가 되는 것까지 의도한다. 그래서 구성적 설득에서는 논리만큼이나 말하는 사람의 태도(ethos)와 듣는 사람이 느끼는 감정(pathos)이 중요하다. 비록 완전한 일체감을 확보할 수 없어도 말하는 사람을 신뢰하고 공감할 수 있는 부분이 확대되는 것이 무엇보다 필요한 것이다.

오바마 대통령은 두 가지 요소의 조합을 잘 이해하고 있다. 변호사와 시민활동가라는 이력이 말해주듯 논리적 설득과 구성적 설득은 몸에 배어 있다. 간명하고 적절한 단어를 사용해 운율을 타는 말솜씨, 미국인 모두에게 잃어버린 꿈을 다시 꾸게 만든 감동적인 대중연설은 이미 수사학의 교본이 됐다. 이제는 정당 지도자로서의 능력까지 인정받았다. 그는 행정부 관료뿐만 아니라 최초에는 소극적이던 하원의장까지 동분서주하도록 만들었고 지역구의 의사를 대변해야 하는 하원의원들에게 지역구를 넘어 나라의 장래를 고민해야 할 이유를 납득시켰다.

정치적 설득은 도덕적 상황적 미학적 실천적 효과까지 모두 고려해야 하는 종합 예술이다. 이견을 납득시키고 목표에 공감을 얻어내고 바뀐 생각을 유지시키는 일은 쉽지 않기 때문이다. 현란한 논리만으로 무장한다면 상대방의 불쾌감을 불러일으키고 감성에만 호소한다면 공허한 정치적 선전이라는 비난을 받는다. 실용이라는 이름으로 아무런 원칙도 제시하지 않는다면 조야한 정치적 거래만 남는다. 정치적 설득은 이렇듯 의견을 교환하는 소통과도 다르고 자신의 이익을 최대화하려는 협상과도 다르다. 정치적 설득은 함께 살아가야 하는 이유를 각인시키는 공화의 리더십이다.

함께 살아가야 할 이유를 말하라


마키아벨리는 이러한 리더십의 상실을 ‘야망이 부른 방종’이라고 불렀다. 그가 친구에게 보낸 편지가 눈길을 끈다. “나는 나의 조국(patria)을 내 영혼(anima)보다 사랑하네. 내 육십 평생의 경험으로 자네에게 말하네만, 지금보다 더 어려운 상황은 없었네. 평화는 필요하지만 전쟁을 포기할 수는 없고, 평화든 전쟁이든 어떤 것도 잘할 수 없는 군주를 우리가 모시고 있지 않는가.” 정치인이 눈여겨봐야 할 대목이다. 여야 지도자는 무엇이든 할 수 있다고 목소리를 높이기보다 자신들의 정당 내부만이라도 설득을 통해 통합을 이뤄낼 필요가 있다. 시민들은 진정한 정당정치의 정면승부를 기다리고 있다.

곽준혁 고려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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