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창간 90년 동아일보, 항상 국민과 함께하겠습니다

  • 동아일보
  • 입력 2010년 4월 1일 03시 00분


‘조선민중(民衆)의 표현기관으로 자임하노라. 민주주의를 지지하노라. 문화주의를 제창하노라.’ 1920년 4월 1일 동아일보는 3대 주지(主旨)를 밝히며 세상에 태어났습니다. ‘조선민중’은 식민지 현실에서 억압받는 우리 민족의 실체를 뜻하는 말이었습니다. 동아일보 창간사는 ‘본사의 전도(前途)가 심히 험하도다. 오인(吾人)은 오직 민중의 친구로서 생사진퇴를 그로 더불어 한 가지 하기를 원하며 기(期)하노라’라는 결의로 맺었습니다. 민족지(民族紙)의 가시밭길을 예견하면서도 그 길을 겨레와 함께하겠다는 다짐이었습니다.

오늘의 우리는 인촌 김성수를 필두로 창간 주역들이 약속하고 실천한 언론정신을 되새기며, 국민의 편에서 대한민국의 더 나은 미래를 모색하는 신문으로 새로운 10년, 100년을 열어가려 합니다.

동아일보는 일제강점기에 ‘정부를 대신하는 신문’으로 분투했다고 자부합니다. 창간 2주 만에 3·1운동 1주년 무렵의 항일독립 움직임을 보도해 첫 발매금지를 당했습니다. 1936년 베를린 올림픽 마라톤 우승자인 손기정 선수의 사진에서 일장기를 말소한 보도 등으로 4회에 걸쳐 1년 7개월간 무기정간을 당했습니다. 발매 중지 63회, 압수 489회, 기사 삭제 2423회의 모진 탄압을 받다 1940년 8월 10일 강제 폐간되고 말았습니다.

1923년 동아일보가 주최한 제1회 전조선여자연식정구대회는 가부장적 가치관이 엄존하던 시절에 여권(女權)의 기치를 높이든 문화사적 대사건이었습니다. 1931년에는 민족의 자주독립 역량을 키우기 위해 본격적인 문맹퇴치 운동을 전개했습니다. 문화가 국력의 핵심 척도인 21세기에 동아일보는 문화주의를 새롭게 심화하고 고양해 나가겠습니다.

1945년 12월 광복 넉 달 만에 복간한 동아일보는 역사의 고비마다 자유민주주의 수호와 국리민복 증진을 위한 언론의 소임에 충실하고자 했습니다. 6·25전쟁으로 1951년 1월 10일 부산에서 간행된 속간호(續刊號)는 ‘이 붓대가 부러지는 날까지 다같이 뭉쳐서 침략자를 물리치고 조국의 민주통일과 인류의 자유와 평화를 위해 미력을 다하고 자유와 정의를 사랑하는 전 세계 민주여론에 호소하자’고 다짐했습니다.

1960년 4·19 민주혁명의 동력(動力) 속에도 동아일보의 언론정신이 녹아있습니다. 그해 정·부통령을 뽑는 3·15선거 때 여당이 저지른 부정을 낱낱이 폭로했습니다. 마산에서 경찰의 최루탄이 눈에 박힌 김주열 군의 시신이 발견되자 억울한 죽음을 앞장서 알렸습니다. 민주화 과정에서 동아일보는 유신독재를 비판하다 정권의 광고 탄압에 의한 백지광고 사태라는 유례없는 고초를 겪었습니다. 그때 수많은 국민이 ‘동아일보여 힘내라!’며 광고를 대신 채워주셨습니다. 1987년에는 박종철 군 고문치사 사건을 끈질기게 파헤쳐 잇단 특종으로 대서특필함으로써 6월 항쟁과 민주화의 견인차 역할을 했습니다. 대한민국의 정체성을 폄훼하는 세력, 북한 주민의 인권을 유린하는 집단과 추종세력에 대해서는 그 불순성과 과오를 단호히 비판했습니다.

험산준령(險山峻嶺)을 넘어 90회 생일을 맞은 동아일보는 다시 옷깃을 여미고 신발 끈을 조여 매고자 합니다. 국민이 선택한 정부, 국민의 세금으로 운영하는 기관들이 과연 국리민복을 위해 최선을 다하는지 눈 똑바로 뜨고 감시하겠습니다. 성숙한 자유민주주의와 상식이 통하는 정치가 이 땅에 뿌리내리도록 올곧은 시시비비(是是非非)를 계속할 것입니다.

특히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 그리고 법치(法治)를 통한 국가발전과 민생 향상을 위해 흔들림 없이 노력하겠습니다. 국가잠재력 극대화의 필수조건인 소통과 통합을 촉진하는 공론(公論)의 광장 역할을 하면서 약자와 소외계층의 기회 확대 및 격차 해소를 위해 더욱 힘쓰겠습니다.

동아일보는 2400만 북녘 동포의 삶에서도 눈길을 떼지 않겠습니다. 대한민국은 민관군(民官軍)이 철저한 안보태세를 갖추고 북한의 급변사태에 대비해 한반도 주변국과 긴밀한 신뢰관계를 다져나가야 합니다. 이를 위한 언론의 역할에 소홀함이 없도록 하겠습니다.

선진화는 경제발전만을 의미하는 것은 아닙니다. 동아일보는 앞서가는 세계인으로 대접받을 수 있는 성숙한 국민의식이 보편화하고, 합리적이고 선진적인 가치에 대한 사회적 합의가 이루어지도록 배전의 노력을 기울이겠습니다.

최근 미디어 세계는 다양한 매체들의 융합과 재편 속에서 급속히 진화하고 있습니다. 동아일보는 ‘방송저널리즘의 선구자’였던 동아방송의 신화를 재현해 대한민국 미디어의 확실한 업그레이드를 국민 앞에 실현해 보이고자 합니다. 정확한 사실보도와 품격 높은 논평으로 동아일보의 명성을 이어가면서 글로벌 미디어그룹으로 도약하겠습니다.

동아일보는 나라가 백척간두에 섰을 때 겨레의 진정한 대변자가 되겠다는 일념으로 세상에 나온 초심(初心)을 되새기며, 국민 앞에 겸손하고 국가를 위해 더욱 고민하는 신문이 되겠습니다. 독자 여러분의 사랑과 격려에 다시 한번 머리 숙여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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