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에서/장환수]기상 전문가 마이클 조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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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0년 4월 5일 03시 00분


마이클 조든은 지리학도였다. 노스캐롤라이나대 3학년을 마치고 시카고 불스에 입단했지만 학업에 대한 열정은 식지 않았다. 농구가 없는 여름을 이용해 2년간 서머스쿨을 다닌 끝에 학사모를 썼다. 조든은 “내가 농구를 안했다면 기상 전문가가 됐을 것”이라고 했다. 타이거 우즈는 2학년 때 중퇴하긴 했지만 스탠퍼드대에 진학하려고 돈방석이 예약된 프로 전향을 늦췄다. 우즈의 전공은 경제학이었다. 1980년 레이크플래시드 겨울올림픽에서 전무후무한 빙상 전관왕에 오른 에릭 하이든은 2010년 밴쿠버 겨울올림픽에는 미국 대표팀 주치의로 참가했다. 벨기에 요트 국가대표였던 자크 로게 국제올림픽위원회(IOC) 위원장도 의사 출신이다.

반면 우리나라는 어떤가. 스타 선수 출신이 학업에서 큰 성취를 이뤘거나, 체육 교수나 행정가 말고 다른 분야에서 활약한다는 얘기를 들어본 기억이 별로 없다. 왜 그럴까.

기자는 야구부가 있는 중학교를 나왔다. 선수 3명이 같은 반이었다. 그러나 그들을 기억하지 못한다. 그들은 교실에 없었다. 야구를 좋아했던 기자는 후보 선수 모집 때 지원하기도 했다. 그러나 곧바로 담임교사에게 불려가 혼쭐이 났다. 공부해야 될 애가 무슨 운동이냐는 질책이었다.

쉽게 그림이 그려지지 않는가. 왜 우리나라에는 공부 잘하는 선수, 운동 잘하는 학생을 찾아보기 힘든지. 이런 악순환의 고리를 끊기 위해 15명의 국회의원이 올해 초 학교체육법안을 발의했다. 두 손 들어 환영한다. 그러나 이 법안은 한 달 전 부결됐다. 다른 이유가 없었다. 당파 간에 이해가 엇갈린 때문이었다. 대표 발의를 했던 민주당 안민석 의원은 다시 입법 절차부터 거쳐 여름에 재발의할 것이라고 한다.

그렇다면 오히려 잘된 일이다. 기존의 학교체육법안은 아쉬운 부분이 있어 보였다. 공부 못하는 선수에겐 대회 참가를 막는 무시무시한 최저 학력제가 있지만 운동 못하는 학생에겐 최저 체력제가 없다는 게 유감이다. 공부가 더 중요하다는 심각한 오해를 불러일으킬 수 있다. 대안으로 내놓은 학생건강체력평가가 예전의 체력장보다도 효과가 있을지 의문이다.

주말, 방학 리그제로 대표되는 선수의 학습권 보장도 잘 살펴봐야 한다. 지난달 출범한 대학농구리그는 주중 오후 5시에 경기를 하고 방학인 12월에 플레이오프를 한다. 경기를 하는 것은 10분 만에 강의실을 옮겨 다니며 수업을 듣는 것과는 차원이 다르다. 5시 경기를 위해 선수들이 언제부터 몸을 풀어야 하는지 안다면 이 리그의 학습권 보장은 성공하기 힘들다는 답이 나온다. 조든의 경우처럼 주말, 방학 때 공부하고 평소에는 운동을 하는 역발상도 가능해 보인다.

엘리트 스포츠를 살려야 한다는 반대파의 의견도 눈여겨봐야 한다. 제2의 김연아 박태환이 될 재목이라면 총력을 기울여야 한다. 아인슈타인에게 왜 사회성이 부족하냐고 따지는 아둔한 일은 없어야 한다. 예산 문제도 구체적으로 재원 확보 방안을 찾아봐야 한다.

법안에선 다루지 않았지만 우리나라 체육의 가장 큰 문제는 사실 잘못된 교육 제도와 맞물려 있다. 체육특기생 제도는 선수의 출전권을 갖고 있는 감독에게 무소불위의 권력을 안겼다. 경기 실적이 우선이니 구타, 성폭행도 그냥 넘어간다. 심판 매수와 입시 비리가 생긴다. 체육특기생은 체육 관련 학과에만 배정되는 것도 문제다. 선수는 법대를 다니면 안 된다는 법이라도 있는가.

장환수 스포츠레저부장 zangpab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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