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종기지에 이은 한국의 두 번째 남극기지 건립 장소가 동남극 지역의 테라노바 만으로 최종 확정됐다. 이로써 우리는 세계에서 아홉 번째로 남극에 두 개 이상의 연구기지를 보유한 국가가 될 것으로 전망된다. 한반도의 60배 크기인 남극대륙은 마지막 자원의 보고라 불릴 만큼 어마어마한 양의 석유와 광물 자원이 매장돼 있다고 추정되는 곳이다. 이곳의 자원은 어느 국가의 소유도 아닌 인류 공동의 자산이므로 자원 개발을 위한 국제사회의 노력에 동참하는 일은 인류 공영에 기여하는 동시에 국가적 위상도 높일 수 있는 길이다.
남극은 호락호락한 땅이 아니다. 제2남극기지가 들어설 테라노바 만만 해도 혹한과 눈보라가 계속되는 남위 74도의 극한지역이라 기지 건설과 연구 활동에서 많은 제약과 어려움을 감수해야 한다. 또 아라온호와 같은 쇄빙선이 접근할 수 있는 날이 1년에 70일 정도밖에 되지 않아 기지 건설이 가능한 시간도 넉넉하지 않다.
하나에서 열까지 쉽지 않은 남극 환경에 우리뿐 아니라 세계 여러 나라에서 끊임없이 도전하는 데는 자원 개발만큼 중요한 다른 이유가 있다. 입지 제약이 극도로 심한 지역에 연구기지를 건설했다는 사실은 그 자체로 자국의 과학 연구 역량이 선진화됐음을 입증하는 좋은 증거가 된다. 그뿐만 아니라 기지를 세우고 연구 활동을 하면서 쌓은 경험과 연구 성과는 해저 사막 우주 등 인류가 아직 도전하지 않은 다양한 극지대로 진출하는 데 큰 도움이 된다. 이 때문에 세계 여러 나라에서는 극저온지대나 최고도지대 등 남극에서도 극한 환경에 속하는 곳에 과학기술력과 연구역량을 시험하기 위한 부단한 노력을 기울이는 중이다.
남극 기지 건설에 쓰이는 대표적인 첨단기술로는 영국 독일 벨기에가 사용하는 모듈라 공법을 꼽을 수 있다. 대부분의 건축 공정을 현장이 아닌 다른 곳에서 사전 제작해 현장에서 단순 조립하는 첨단 공법이다. 건설 인력과 공사기간이 크게 줄어들고 악조건에서도 탁월한 건축 성능을 발휘한다. 이 공법은 달 기지나 화성 기지 등 인류가 향후 개척할 새로운 극지에도 적용할 수 있다. 남극에서 기술에 대한 시험단계를 이미 거쳤으므로 새로운 환경에 진출하며 국가 간 보이지 않는 경쟁에서 앞서 나갈 가능성이 그만큼 커진다.
남극보다 한 걸음 더 나아가 우주를 내다보는 연구 선진국에 비해 우리의 본격적인 출발은 다소 늦은 편이다. 세종과학기지는 남위 62도인 남극 최북단 주변부에 위치해 극한환경에서의 기지 건설 실험은 물론이고 대륙과 대륙붕 지역을 조사하고 빙하와 대기, 극지 생물, 운석을 본격적으로 연구하기에는 상당한 제약이 있었다. 이 점을 보완할 제2남극기지가 세종기지를 건립한 지 22년이나 지나 선정됐다는 점은 분명 아쉬운 부분이다. 우리와 함께 진출했던 다른 국가는 이미 추가 기지 건립은 물론이고 기술 검증과 연구 활동 등 유효한 성과를 거두고 있다. 우리의 연구개발 인프라는 국제 선진연구기관의 20% 수준에 불과하다.
남극의 위상은 예전과 확실히 달라졌다. 생존이 어려운 척박한 환경으로 여겨지던 곳이 미래 과학기술 발전을 가능하게 하는 천혜의 환경으로 재인식되고 있다. 미래를 위한 기회의 땅 남극대륙에 전 세계가 주목하는 이 시점에서 남극 내륙기지의 건설과 개발은 지구 환경문제 해결에 동참한다는 국가 브랜드를 만들기 위해서도, 우주와 같이 아직 인류에게 허락되지 않은 또 다른 극지 진출을 위해서도 꼭 필요하다. 늦은 만큼 철저한 계획 수립과 신속하고 지속적인 투자를 뒷받침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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