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수상기록 지워 아이들 向上心짓누르는 官治교육

  • 동아일보
  • 입력 2010년 4월 7일 03시 00분


교육과학기술부가 초중고교 학생부에 교과와 관련된 모든 외부 경시대회의 수상 실적을 기재하지 못하도록 하는 계획을 발표했다. 이렇게 되면 공부 잘하는 학생들이 주로 참가하는 수학·과학올림피아드는 물론 영어토론대회, 창의력 관련 대회 수상 실적 같은 것은 학생부에 적을 수 없다.

이 같은 극단적인 조치의 근저에는 각종 대회 수상 실적이 사교육을 유발한다는 판단이 자리 잡고 있다. 실제로 경시대회 학원의 사교육비가 비싼 것은 사실이다. 초등학생 수학올림피아드 준비 학원의 수강료가 3개월에 120만 원이 넘는다. 이번 조치로 공신력 없는 경시대회의 난립을 막고 참가 열기를 식혀 사교육비 경감에 도움이 될 것이라는 기대도 있다.

그러나 각종 경시대회에 나가 좋은 성적을 받기 위해 노력하는 것 자체가 학생들에게 새로운 동기를 부여하고, 숨은 능력과 창의력을 발굴하는 일이다. 교육부의 조치는 학생들에게 자기계발(啓發)을 위한 인센티브를 주지 말라는 요구와 같다. 정부는 ‘사교육비 경감’에만 매달려 미래세대의 잠재력 계발이라는 교육의 본질을 외면하고 있다. 예상되는 부작용도 만만치 않다. 경시대회 수상 실적도 적지 못하면 대학과 입학사정관들은 무엇을 보고 신입생을 선발해야 할지 갈피를 못 잡을 것이다. 내신 성적과 교내 대회 입상을 위해 오히려 사교육에 몰릴 우려도 크다.

중산층과 서민의 부담을 덜어주기 위해 사교육비 경감책을 쏟아내는 것은 이해할 수 있다. 하지만 어린 학생이 상 받기 위해 열심히 공부하는 것을 관치(官治) 행정으로 막을 일이 아니다. 교육평등주의가 판치던 과거 좌파 정부 때도 이러지는 않았다. 공교육 개혁을 제대로 하지 않는 한 사교육은 사라지기 어렵다.

이 정부는 우수인재 육성에 큰 몫을 해온 외국어고와 자립형사립고를 옥죄고, 대학수학능력시험의 70%를 EBS 강의에 연계시키고도 모자라 경시대회 참가까지 사실상 차단하려는 것이다. 교육의 본질이야 어떻게 되든 사교육만 잡으면 그만이라는 단순한 발상이다. 세계화 정보화가 될수록 글로벌 경쟁력을 갖춘 창의적 인재가 나라를 먹여 살린다. 현 정부가 교육 포퓰리즘에 흔들려 학생들의 향상심(向上心)을 꺾는다면 미래세대에 죄를 짓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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