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강국 헌법재판소장은 그제 “헌법에서 말하는 법관의 양심은 내면적 주관적 양심이 아니라 법관으로서의 직업적 양심을 뜻한다”고 말했다. 이 소장은 “국민은 법관의 이념적 실험대상이 아니다”라며 “법관이 정치적·이념적 편향에 따라 재판한다면 법치주의 근간을 흔드는 ‘현대판 원님 재판’이 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서울대 법학전문대학원(로스쿨) 초청으로 예비 법조인들에게 한 특강 내용이다. 헌재의 공식 의견이라고 볼 수는 없지만 대법관을 지냈고 헌법에 관한 최고·최종 유권해석을 하는 헌법기관 수장(首長)의 헌법 해석이라는 점에서 후배 법관들에게 주는 무게와 권위가 남다르다.
이 소장의 말처럼 개인의 가치관을 배제하고 불편부당한 입장에서 정치적 중립을 지키며 심판하는 것이 법관의 직업윤리다. 헌법은 ‘모든 국민은 양심의 자유를 가진다’는 조항(19조)과 ‘법관의 양심’ 조항(103조)을 별도로 두고 있다. 개인의 기본권에 속하는 ‘학문·양심의 자유’와 검증된 법리에 따라 예측가능하고 국민이 납득할 수 있는 재판을 해야 하는 법관의 직업상 윤리가 구별되기 때문이다. 재판에 적용할 법률과 판례가 마땅히 없을 경우 법관은 국민 다수가 생각하는 정의와 사회의 건전한 상식을 기준으로 삼아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지난해 히스패닉계로는 처음이고 여성으로는 세 번째로 미국 연방대법관이 된 소니아 소토마요르는 인사청문회에서 “판사는 법률을 사실에 적용할 뿐이지 자신의 감정을 사실에 이입할 수 없다”고 말했다. 판사 개인의 인종적 성적 기준에 영향을 받는 감성적 판단이 법률적 판단보다 앞서지 않아야 한다는 인식을 분명히 한 것이다.
최근 사법개혁 논란은 법관의 양심을 주관적 개인적 양심으로 혼동한 일부 법관의 ‘튀는 판결’ 때문에 시작됐다. MBC PD수첩의 광우병 프로그램, 강기갑 민주노동당 대표의 국회 활극, 전교조 시국선언, 빨치산 추모집회에 대한 무죄 판결은 법관의 직업윤리에 대한 의구심을 불러일으켰다. 다원화하고 이념이나 세대 간 갈등이 깊어진 사회일수록 법관들은 이 소장의 ‘법관 양심론’을 곱씹어볼 필요가 있다. 대법원도 개인적 신념을 앞세운 일부 하급심법관의 판결들에 대해 무엇이 법의 정신이고, 법관의 자세는 어떠해야 하는지를 명징(明澄)한 판결을 통해 보여줄 책임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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