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아침 출근길 지하철. 주위를 유심히 살펴봤다. 눈이 휘둥그레졌다. 10명 중 무려 8, 9명이 휴대전화를 든 채 무엇인가에 열중하고 있었다. 젊은 층일수록 손놀림이 부산하다. 휴대전화를 깜빡하고 집에 두고 출근하면 온종일 ‘좌불안석 증후군’에 빠진다는 현대인.
농촌에서도 논밭일을 하다 휴대전화로 자장면을 시켜먹는다는 얘기도 들린다. 생활 구석구석이 휴대전화 영향권에 들지 않은 곳이 없을 정도다. 각종 모임에서 날짜 확인할 때를 떠올려보시라. 휴대전화 대신 수첩을 꺼내는 사람들은 주위 눈치를 봐야 하는 요즘이다. 가위 ‘모바일 신드롬’이다.
최근엔 아이폰 등 첨단 휴대전화 열풍까지 몰려오고 있다. 가장 폐쇄된 사회라는 북한에서도 휴대전화는 ‘뜨고 있는’ 물품이다. 북한의 휴대전화 가입자가 12만 명을 넘어섰다는 최근 신문보도가 이를 잘 보여준다.
휴대전화 사용이 확산될수록 모든 것이 더 편리하게 바뀌고 있는 걸까. 꼭 그렇지는 않다. 반대인 경우도 적지 않다. 휴대전화가 퍼지면 퍼질수록 근거지에서 쫓겨나거나 생명을 위협당하는 사례도 속출하고 있다. 묘한 아이러니다. 휴대전화 속에는 아프리카인과 고릴라의 눈물이 흐르고 있다는 얘기다.
사연은 이렇다. 아프리카 콩고민주공화국의 동부지역에는 거대한 콜탄(coltan) 채굴 광산이 있다. 콜탄은 휴대전화 전압을 일정하게 흘려주는 전자회로를 만드는 데 없어서는 안 될 중요 원료다. 휴대전화 생산이 늘면서 콜탄이 금처럼 귀한 광물로 대접을 받기 시작했다.
당연히 콜탄 채취가 수년 전부터 크게 늘고 있다. 그런데 하필이면 콜탄 광산과 고릴라 서식지가 거의 비슷한 지역에 있다는 게 비극의 싹이다. 콜탄이 잘 팔려나갈수록 고릴라 보금자리는 야금야금 파괴되고 있다. 죽어 나가는 고릴라도 속출하고 있다.
콜탄 세계 매장량의 60% 이상이 콩고민주공을 중심으로 아프리카에 몰려 있다. 이전에는 콜탄 가격이 1kg에 40달러 정도에 불과했다. 휴대전화 사용이 크게 늘자 최근 10배 이상 가격이 폭등하고 있다는 것.
중국 베이징에서 나비 한 마리가 작은 날갯짓을 시작하면 여러 경로를 거쳐 뉴욕에서 폭풍이 몰아칠 수 있다. 바로 나비효과다. 마찬가지로 좀 비약하면 휴대전화를 더 많이 누를수록 지구 반대편 아프리카에서는 고릴라가 더 없어진다는 말도 되는 셈이다.
이뿐만이 아니다. 휴대전화와 내전(內戰)은 별 관계가 없을 것 같지만 잘 살펴보면 그렇지 않다. 아프리카에서는 콜탄의 채굴과 유통망 중 상당 부분이 무장 반군세력 수중에 들어가 있다. 반군은 채취한 콜탄을 팔아 무기와 활동자금을 조달하고 있다. 반군의 손에 들어간 무기는 다시 지역 주민을 몰아내는 악순환이 반복되고 있다. 천혜의 자원이 오히려 불행의 씨앗이 되고 있는 것이다.
내전과 부패를 고발하는 비영리단체인 ‘글로벌 위트니스’는 아프리카 주민들을 강제노역으로 내몰아 채굴한 광물이 내전의 자금줄이 되고 있다고 최근 폭로했다.
이름만 대면 잘 알 만한 글로벌 기업들이 이런 광물의 공급사슬에 얽혀 있는 것도 아이러니다. 휴대전화 하나에도 이처럼 정치 경제 등 다양한 국제문제가 녹아 있다. 담장이 없는 글로벌 세상에 우리가 살고 있다는 방증이기도 하다. 옆에 있는 휴대전화를 지금 한번 만져 보시라. 혹 이전과는 다른 느낌이 드시는가….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