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 포커스/니컬러스 크리스토프]큰소리 칠수록 작아지는 中지도부

  • 동아일보
  • 입력 2010년 4월 9일 03시 00분


중국 춘추시대인 약 2500년 전 춘추5패 가운데 한 명인 오(吳)나라 왕 합려(闔閭)가 전설적인 군사전략가 손자(孫子)를 왕궁으로 초대했다. 그의 전략이 얼마나 뛰어난지 시험하고 싶어서였다. 왕은 궁녀에게도 군사 훈련이 가능한지 물었다. 손자는 합려의 허락을 받아 궁녀 180명을 모은 뒤 두 편으로 갈랐다. 왕이 가장 총애하는 궁녀 두 명을 대장으로 삼았다.

궁녀들에게 제식동작을 설명한 뒤 명령을 내렸지만 이들은 농담처럼 받아들였다. 손자가 다시 직접 북을 치며 “우향 앞으로 가”라고 명령했지만 이들은 희희낙락할 뿐이었다. 화가 난 손자는 한 번 더 북을 치며 “좌향 앞으로 가”라고 명령했다. 하지만 궁녀들은 폭소만 터뜨릴 뿐 꿈쩍도 하지 않았다. 손자는 “군령(軍令)이 분명히 전달됐는데도 병사들이 따르지 않는 것은 대장의 책임”이라며 두 대장 궁녀의 목을 벴다. 그러자 겁에 질린 궁녀들은 일사불란하게 명령에 따랐다.

이 이야기는 최근 중국 공산당이 취하고 있는 대외 전략을 고스란히 반영하고 있다. 구글의 중국 대륙 철수와 미국의 위안화 절상 요구에 대한 중국 정부의 자세는 완고한 손자를 닮았다. 오믈렛을 만든다며 일단 달걀부터 깨뜨리고 보는 모습 말이다.

우리 서양인들은 중국이 서양에 대적할 수 있는 신생 강국이라고 보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오늘날 중국의 국내외 실상은 그리 단순하지 않다. 내 생각에 중국 지도부는 상처를 받기 쉬운 감성을 가진 듯하다. 우리는 연간 10%가 넘는 경제성장률에 경탄하지만 중국의 지도자들은 높아지는 실업률에 국민이 들썩이지 않을까 전전긍긍한다. 중국이 위안화 절상 요구에 완강하게 버티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무책임한 환율정책이 세계 경제의 불균형을 초래하는 것은 그들에게 별개 문제다.

중국 정부는 젊은이들에게 애국 교육을 시키고 민족주의를 부추긴다. 이는 중국과 서양의 갈등을 일으키고 많은 문제에서 중국 정부와 국민이 한편이 되게 하는 결과를 낳는다. 서양인은 중국 정부가 티베트의 인권을 존중하고 저평가된 위안화 가치를 반드시 재조정해야 한다고 생각하지만 중국 지도부와 국민은 이는 200년 이상 계속되는 서양 제국주의의 ‘중국 들볶기’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인터넷은 다르다. 중국 정부와 구글이 맞섰을 때 중국의 젊은이들은 자국 정부 대신 구글 베이징(北京)지사에 꽃다발을 선사했다. 그렇다고 중국인이 자유로운 인터넷 환경을 주지 않는다고 중국 정부에 화를 내는 것도 아니다. 경제가 초고속으로 성장하고 생활의 질이 높아지는 한 중국인은 투표권이 없다고 분개할 만큼 정치적이지도 않다. 평범한 중국인이 분개할 때는 부정부패한 관리를 보거나 이들이 친인척을 등용할 때다. 중국인은 자국 내 검색엔진 바이두(百度)를 구글보다 선호한다. 우리가 혹시 자국 정부에 대한 중국인의 불만을 과장하는 건 아닐까.

중국 지도부는 경쟁상대를 두려워한다. 반대 의견을 가차 없이 묵살하는 걸 보면 확실히 그렇다. 하지만 이는 약자의 모습이지, 강자의 모습은 결코 아니다. 중국 공산당은 통찰력 있는 정책과 인상적 통치로 최근 30년간 초고속 경제성장을 이뤄내는 데 성공했다. 동시에 이런 성장으로 새롭게 자라난 중산층을 정치적으로 포용하는 측면에서 실패했다. 중국 정부의 가장 치명적인 약점은 국민에게 용기를 북돋우거나 국민이 두려움을 느끼도록 하지도 못하면서 단순히 그들을 괴롭히고 있다는 점이다.

니컬러스 크리스토프 뉴욕타임스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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