곪았던 게 마침내 터졌다는 표현이 정확할 것 같다. 한국 스포츠의 효자 종목인 쇼트트랙이 최근 뒤숭숭하다. 대한체육회는 밴쿠버 겨울올림픽 2관왕 이정수(단국대)의 지난달 세계선수권대회 불출전이 “코치의 강압적인 지시에 의한 것으로 추정된다”고 발표했다. 이와 함께 지난해 4월 대표 선발전에서 일부 코치와 선수가 모여 대표팀에 뽑히면 모두가 메달을 딸 수 있도록 하자는 협의를 했다고 밝혔다.
쇼트트랙에서 나눠먹기 담합인 일명 짬짜미가 있다는 소문은 예전부터 있었다. 하지만 누구 하나 나서서 밝히지 않았다. 보복을 당할 수 있고, 당장은 아니더라도 언젠가는 자신이 수혜를 받을 수도 있기 때문이었다. 결국 관행이 돼버린 짬짜미는 이번에 이정수의 폭로로 실체가 드러났다. 대한빙상경기연맹은 철저한 조사에 나서기로 했다. 진상이 제대로 밝혀질지는 여전히 의문이지만 이제 다시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을 가능성은 커졌다.
눈여겨볼 것은 체육회 감사에서 나타난 이정수의 행동이다. 그는 “윗선도 개입됐을 것”이라는 말을 서슴지 않았다. 자신에 대한 것뿐만 아니라 조직의 부조리를 겨냥했다. 개인을 넘어 전체를 바꾸겠다는 의지로 보인다. 최근 신세대 선수들은 각종 부조리에 당당히 맞서고 있다. 지난해 배구 대표팀의 박철우(현대캐피탈)는 훈련 중 코치에게 폭행을 당했다. 평소처럼 조용히 넘어갔을 수도 있었지만 그는 기자회견을 열었다. 결국 배구협회는 박철우 사건뿐만 아니라 그간 대표팀에서 있었던 폭행을 모두 조사했다. 한 아마추어 선수는 대표팀 훈련 경비의 유용 실태를 직접 조사해 협회장에게 보고해 시정한 적도 있었다.
그동안 선수와 지도자들은 잘못을 알아도 선뜻 나서지 못했다. 잘못됐다고 따지거나 반발하면 동료, 선후배에게까지 피해가 갈 수 있기 때문이었다. 요즘 신세대 선수들은 다르다. 불합리한 점이 있으면 밝히고, 바꾸기 위해 노력한다. 당장은 피해를 보더라도 제2의 피해자가 나오는 것을 막을 수 있다는 생각에서다. 외부로 알릴 수단이 다양해진 것도 이들의 용기를 북돋웠다. 과거에는 윗사람 또는 언론을 통해서만 밝힐 수 있었지만 이제는 인터넷을 이용해 손쉽게 외부에 알릴 수 있다.
2006년 쇼트트랙의 파벌 싸움이 공개된 뒤 대한빙상경기연맹 박성인 회장은 뒤늦게 “쥐 한 마리 잡자고 독을 깰 수는 없었다”며 사과문을 발표했다. 부조리는 결코 가볍게 볼 쥐가 아니다. 파벌이나 담합, 승부 조작은 더욱 그렇다. 독을 깨더라도 쥐를 잡는 게 급선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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