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 시절, 체력장 검사를 처음 받고 가장 먼저 떠올린 말이 ‘한계’였습니다. 달리기 턱걸이 팔굽혀펴기 멀리뛰기 등등에서 모든 아이들이 다른 한계를 나타냈습니다. 남보다 잘하는 아이가 있고 남보다 못하는 아이가 있었습니다. 그때는 상대적인 비교라는 걸 몰랐지만 남보다 잘한 아이는 우쭐한 표정을 보이고 남보다 못한 아이는 울적한 표정으로 교실로 돌아갔습니다.
어른이 되어도 남과 비교당하는 일은 끊이지 않습니다. 세상 모든 분야에서 사람은 사람과 비교되고 그것으로 우열과 승패가 가려집니다. 경쟁을 하고 시험을 치르고 판정을 기다려야 합니다. 기쁨을 만끽할 수 있지만 깊은 좌절감을 느낄 수도 있습니다. 사회적인 패배감이 커지면 세상을 원망하고 질시하며 아예 경쟁 대열에서 이탈하거나 낙오할 수 있습니다. 잦은 패배가 자신에 대한 절망과 경쟁에 대한 두려움을 불러오기 때문입니다.
세상이 경쟁 시스템으로 돌아가는 걸 탓하는 사람이 많습니다. 자본주의의 근원적 폐해로 보는 사람도 많습니다. 하지만 그것은 특정한 이념이나 사회적 경향을 반영하는 게 아닙니다. 세상 어느 곳이나 사람이 모인 곳이면 자연스럽게 나타나는 현상이기 때문입니다. 문제는 경쟁이 아니라 이면에 숨은 인간적 과제입니다.
인간은 태어날 때부터 한계를 지닌 존재입니다. 생명에도 한계가 있고 신체적 정신적 조건에도 한계가 있습니다. 하지만 참으로 다행스러운 점 한 가지는 인간에게 주어진 한계에는 한계가 없다는 사실입니다. 모든 한계는 극복하기 위한 과제일 뿐 불변의 한계는 존재하지 않습니다. 태어나서 죽음을 맞이한다는 일 이외, 모든 조건은 극복의 대상일 뿐입니다.
자기 발전의 출발점은 자기 한계를 인정하는 지점입니다. 자기 한계를 부정하고 자기보다 잘하는 사람을 원망하고 질시하는 마음으로는 아무런 변화도 이끌어낼 수 없습니다. 한계를 인정해야 목표가 생기고 극복하기 위한 극기의 과정이 있어야 한계가 상향 조정됩니다. 인간의 한계에 절대치는 없습니다. 마의 벽이라 불리던 모든 기록은 깨지고 인간의 한계는 불굴의 의지로 극복됩니다. 바로 그 지점에서 인간의 존엄성과 위대함이 눈을 뜹니다.
세상에는 자기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피나는 노력을 기울이는 사람이 많습니다. 장애를 지닌 채 국토순례를 하거나 일반인도 오르기 힘들어하는 높은 산에 오르고 올림픽에 도전하기도 합니다. 0.1초의 기록을 단축하기 위해 몇 년씩 피땀 흘리는 운동선수, 열악한 환경 속에서 공부해 마침내 열망하던 시험에 붙은 사람, 몇십 년 동안 남모르게 노력해 육순이나 칠순의 나이에 평생의 꿈이었던 작가나 시인이 되는 사람도 있습니다. 남들이 재능이 없다고 말하거나 못한다고 질타할 때에도 묵묵히 자기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정진한 결과입니다.
한계는 한계를 인정하지 않습니다. 한계의 절대치가 주어지지 않았다는 건 인간의 무한발전 가능성을 의미합니다. 그러니 세상의 외형적인 경쟁에 시달리지 말고 주어진 한계를 극복하기 위한 자신과의 경쟁에 집중해야 합니다. 자기 한계를 극복하지 못하게 만드는 최대의 적, 세상 사람이 아니라 자신이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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