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에서/박제균]우리 곁의 제국

  • 동아일보
  • 입력 2010년 4월 19일 03시 00분


1992년 여름의 어느 날.

나는 중국 상하이(上海)의 황푸(黃浦) 강가를 걷고 있었다. 평일 대낮인데도 수많은 사람이 강변에 앉아 시간을 죽이고 있었다. 많은 남자들은 집에서나 입는 러닝셔츠 차림으로 담배를 피웠다.

자꾸만 한 아이가 따라오며 손을 내밀었다. 안쓰럽기도 하고 귀찮기도 해서 무심코 1달러 한 장을 내민 순간 아차 했다. 조선족 가이드가 “구걸하는 아이들에게 절대 돈을 주지 말라”고 한 걸 깜빡했기 때문이었다. 1, 2초나 됐을까. 어디서 튀어나왔는지 수십 명의 아이가 불개미 떼처럼 나를 둘러싸고 돈을 달라고 소리치는 광경이 펼쳐졌다. 아이들에게 밀려 움직일 수도 없었다. 간신히 가이드의 도움으로 빠져나오긴 했지만 참 당황스러운 기억이었다.

이듬해 여름.

공교롭게도 똑같은 강가를 걷게 됐다. 강변의 풍경은 전해와 다름이 없었다. 또 손을 내미는 아이들이 달라붙었지만 나는 모른 체 걸었다.

상하이를 거쳐 도착한 지린(吉林) 성의 창바이산(長白山·백두산의 중국명) 기슭의 한 호텔. 벌써부터 밀려들어 온 한국인 관광객의 영향인지 가라오케까지 있었다. 가라오케에 가 본 나는 허탈했다. 한쪽에 허름한 나무판자로 만든 듯한 방이 여러 개 있었고 방마다 담요가 깔려 있었다. 개방을 택한 중국에 매춘 등 자본주의 향락문화가 너무 빨리 밀려드는 것 같아 답답했다.

그로부터 7년여가 지난 2001년 1월.

나는 다시 상하이를 찾았다.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의 상하이 방문을 취재하기 위해서였다. 다시 가본 황푸 강가엔 실업자나 구걸하는 아이들은 눈을 씻고 봐도 없었다. 강변의 푸둥(浦東) 지구엔 외국과의 합작으로 지은 초고층 건물이 빽빽했다. 상전벽해(桑田碧海)라는 말로는 모자라는 천지개벽이었다.

상하이 방문 기억들이 떠오른 것은 최근 상하이의 지난해 경제규모가 처음으로 홍콩을 앞섰다는 소식을 접한 때였다. 실업자와 거지가 득실대던 도시가 20년도 안 돼 ‘아시아의 진주’ 홍콩을 제친 것이다.

지난 주말에는 중국이 한국 국채를 사들이고 있다는 뉴스도 나왔다. 중국 중앙은행인 런민(人民)은행과 국부펀드인 중국투자공사(CIC)가 작년 8월부터 월평균 3300억 원의 한국 국채를 순매수해 올해 3월까지 2조6330억 원어치를 사들였다는 것.

대미 무역 흑자국인 중국이 2조4000억 달러나 되는 천문학적인 외환보유액을 바탕으로 미국 국채를 사들인 것이 자산버블을 일으켜 미국발(發) 금융위기를 불러왔다는 분석이 나오지 않았던가. 아직 액수는 크지 않지만 중국의 우리 국채 매입 뉴스가 예사롭게 들리지 않는 이유다.

100년 전 중국은 ‘동아시아의 병자’였다. 하지만 지금은 슈퍼파워 미국의 경제까지 뒤흔드는 ‘G2’의 반열에 올랐다. 한국도 경제성장을 이뤘다고는 하나 100년이 지난 지금도 일본에 비할 바가 못 된다. 여기에 핵실험을 감행하고 천안함을 공격한 것으로 의심받는 북한이라는 ‘불확실성의 덩어리’까지….

어쩌면 한국을 둘러싼 정세는 100년 전 못지않게 엄혹하다. 상황이 이런데도 자국 함정 피격·침몰이라는 국가적 위기사태에서마저 우왕좌왕, 중구난방인 이 나라를 어찌할꼬.

박제균 영상뉴스팀장 phar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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