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 칼럼/최영해]‘빙하의 눈물’ 페루 융가이마을

  • Array
  • 입력 2010년 4월 19일 03시 00분


코멘트
해발 3090m 페루의 고산도시인 우아라스에서 만난 마르코 자파타 씨(62)는 빙하만 30년 넘게 연구한 지질학자였다. 대학에서 지질학을 전공한 그는 페루 농업부 산하 국가자연자원연구소(INRENA)에서 1970년대부터 일해 왔다. 페루 정부에서 재정 지원을 줄이는 바람에 그는 지난해 11월 연구소를 그만뒀다. 한때 40명이 넘던 연구원은 지금은 절반도 채 안 되는 15명뿐이다.

이 연구소는 ‘남미의 알프스’로 불리는 안데스 블랑카산맥의 빙하가 어떻게 움직이는지 관찰해왔다. 해마다 페루 안데스산맥의 빙하는 계속해서 산 정상 쪽으로 후퇴해 1970년에 723.4km²이던 빙하는 2003년에는 27.1%나 줄어들었다. 국제사회는 무분별한 개발로 지구온난화가 가속되면서 앞으로 30년 후엔 페루에서 빙하가 모두 녹아 없어질지 모른다는 자파타 씨의 연구 결과에 주목했다.

지구온난화를 걱정하는 언론과 비정부단체(NGO)가 자파타 씨의 연구결과를 자주 거론하면서 뚜렷한 대책을 갖고 있지 못한 페루 정부는 곤혹스러워했다. 2001년 이후 해마다 그가 직접 촬영한 페루의 파스토루리 지역의 빙하 사진은 빙하가 얼마나 빠르게 녹고 있는지 생생하게 보여준다. 은퇴한 그를 어렵게 수소문한 끝에 지난달 말 우아라스의 한 식당에서 만날 수 있었다. 그는 기자에게 안데스산맥에서 가장 높은 곳인 해발 6768m의 우아스카란 빙하가 녹고 있는 모습을 보여줬다. 그리고 1970년 5월 31일 앙카시 대지진으로 마을 전체가 빙하와 진흙더미로 묻혀버린 대참사의 현장인 융가이 마을(해발 2500m)로 안내했다.

일요일 오후 3시 23분 앙카시 지역 해안에서 발생한 지진은 45초 동안 이어지면서 우아스카란 빙하를 뒤흔들었다. 바위와 얼음, 눈이 뒤섞인 눈사태로 진흙더미가 한순간에 평온에 잠긴 마을을 덮쳐 8000여 명이 매몰돼 사망했다. 1962년에도 무게를 이기지 못한 빙하가 밀려들어 4000여 명의 목숨을 앗아간 비극의 현장이다. 눈사태로 동강난 성당 건물과 형체를 분간하기도 어려운 찌그러진 버스의 잔해가 그대로 있었다. 마을은 흔적도 없이 사라진 대신 추모공원이 한복판에 들어서 있다. 어처구니없는 것은 대재앙의 현장인 마을 끝자락에 학교 건물이 들어서 있는 모습이었다. 자연재해는 반복되고 있는데도 페루 정부는 과거의 악몽을 잊어버린 듯했다.

페루가 대재앙의 위험에 다시 노출되고 있는 것은 선진국의 무분별한 경제개발과 직접 연관돼 있다. 페루는 온실가스 배출비율은 세계의 0.1%에 불과하지만 안데스산맥의 빙하가 녹는 바람에 물 위기가 현실로 다가오고 있다. 인구의 70%가 사막지역인 해안에 몰려 사는 페루에선 빙하에서 나오는 물이 주요한 수자원이다.

하지만 지구온난화에 대비하는 국제사회의 움직임은 더디기만 하다. 미국 상원은 2020년까지 온실가스를 지금보다 20% 줄이는 기후변화법안을 아직 제대로 심의조차 못하고 있다. 버락 오바마 미 대통령은 금융개혁법안이 마무리되면 기후변화법안 통과에 매진할 것이라고 선언했지만 온실가스 규제에 반발하는 대기업들의 로비가 만만치 않다. 하루가 달리 새 공장을 짓고 있는 온실가스 최대 배출국 중국은 구체적인 감축 목표치도 내놓지 않고 있다. 페루 정부 또한 당장 돈이 되는 광산 채굴에 열중할 뿐 빙하의 운명에는 무관심해보였다.

“지구가 더워지면서 제2, 제3의 융가이 사태는 언제든지 일어날 수 있습니다.” 은퇴한 자파타 씨의 경고가 귓전을 때렸다.

―우아라스에서

최영해 워싱턴 특파원 yhchoi65@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