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0년대 국내 북한학계에는 이른바 ‘내재적 접근법’이 유행했다. 다양한 정의(定義)가 있지만 쉽게 말해 ‘북한사회의 특수성을 이해하면 더 잘 설명할 수 있다’는 연구방법이자 자세라고 할 수 있다. 이종석 전 통일부 장관은 “의사가 환자를 처방하기 전에 환자의 신체 상태를 정확하게 이해해야 하는 것과 마찬가지”라고 설명했다.
내재적 접근법은 북한을 전체주의, 공산주의 사회로만 보는 보수진영의 ‘냉전적 북한 보기’에 대한 대안이었다. 결과적으로 진보진영의 ‘북한 이해하기’를 정당화하는 데 활용됐지만 북한 연구방법론을 한층 풍부하게 만든 공(功)을 세운 측면이 없지 않다.
그러나 최근 북한의 행태를 보면 정작 ‘내재적 접근법’이 필요한 쪽은 남한이 아니라 북한 당국자들이 아닌가 생각할 때가 많다. 북한이 천안함 침몰사건과 자신들은 무관하다며 17일 내놓은 조선중앙통신 군사논평원의 글이 대표적인 사례다.
논평원은 천안함이 침몰한 지난달 26일 밤 이후 남한 내부에서 벌어진 일들을 면밀하게 연구했음을 드러냈다. 사건 초기 천안함 침몰의 원인으로 남한 내에서 제기됐던 ‘내부폭발론’ ‘자연 피로파괴’ ‘암초 충돌설’ 등을 조목조목 열거했다. 이명박 대통령과 청와대가 섣부른 북한 연계론을 경계한 대목도 성실하게 인용했다.
그러나 논평원은 “그러던 역적패당이 (최근) 예단해서는 절대 안 된다던 초기 입장에서 갑자기 돌변해 ‘북 관련설’에 대해 떠들기 시작했다”며 “침몰사건이 내부 요인에 의해 발생했거나 원인이 밝혀지지 않을 경우 (남측 정부가) 책임을 지고 당면한 6·2지방선거에서 대참패를 면할 수 없기 때문”이라고 ‘음모론’을 제기했다.
논평원이 아전인수(我田引水) 격으로 사실을 해석하는 오류를 범한 것은 정치선동이 아니라면 남한사회의 특수성을 이해하지 못한 결과일 것이다. 자유민주주의 사회에서는 공공의 관심사가 모두 투명한 절차를 거쳐 민주적으로 처리된다. 남한 정부와 언론은 모든 가능성을 열어놓고 사건 원인을 규명하려 노력했고 15일 천안함 함미 인양에 따라 ‘외부 폭발’과 ‘어뢰 공격 가능성’이 가장 높다는 과학적 추론에 이른 것이다.
정부 고위 당국자는 “북한이 금강산이산가족면회소에 ‘동결’ 딱지를 붙이면 우리 정부가 겁을 먹고 금강산관광을 재개하리라고 기대하는 것도 남측을 몰라도 너무 모른다는 증거”라며 “이제 북측에 남한사회를 ‘내재적 접근’으로 제대로 연구하라고 말하고 싶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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