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손택균]영화 ‘스태프임금쿼터제’가 빨리 정착돼야 할 이유

  • 동아일보
  • 입력 2010년 4월 21일 03시 00분


“하고 싶은 일을 하니까 배가 고픈 건 감수할 수 있지 않느냐고요? 그것도 어느 정도 밥은 먹고살 수 있을 때 하는 말이죠.”

10년 경력의 영화 촬영 스태프 안병호 씨(32)의 말이다. 안 씨의 한숨은 전국영화산업노동조합이 14일 관객 1717명의 서명을 받아 발표한 성명서를 요약해 준다. 노조는 이 성명에서 “수십 년의 영화제작 경력을 지닌 (분장 의상 촬영 조명 등) 스태프들이 생활고에 시달려 아까운 기술과 꿈을 버리고 이탈하고 있다”고 호소했다.

안 씨는 고등학교를 나와 촬영감독협회가 마련한 1년의 실무교육을 받은 뒤 영화 제작 현장에 뛰어들었다. 2003년 개봉한 박찬옥 감독의 ‘질투는 나의 힘’이 촬영 스태프로 참여한 첫 영화. 장진 감독의 ‘아는 여자’, 박해일 강혜정이 출연한 ‘연애의 목적’, 송강호 주연의 ‘우아한 세계’ 등을 꾸준히 거들었다. 크게 흥행하지는 못했지만 모두 평단의 호평을 얻었던 작품이다.

하지만 안 씨는 9편의 장편에 참여한 경력에도 누군가 불러주기만을 하염없이 기다려야 하는 처지다. 지난해 여름 ‘애자’의 제작이 끝난 이후 줄곧 일자리를 찾지 못했다. ‘애자’ 제작에 3개월 동안 참여해 받은 수당은 800만 원뿐이다.

스타 감독과 배우들이 프랑스 칸 등 국제영화제에서 “한국 영화의 위상을 높였다”는 찬사와 함께 스포트라이트를 받으며 시상식에서 활짝 웃는 모습을 볼 때마다 그는 가슴 한쪽이 시리다. 손발을 움직여 영화를 만드는 스태프는 한국 영화가 받는 환호에서 멀찍이 떨어져 있기 때문이다. 주먹구구로 운영되는 인력수급 시스템은 오랜 세월이 지나도 달라지지 않았다. 스태프들은 대개 처음 현장에 발을 딛게 해준 선배의 ‘라인’에 묶여 있다. 고참 선배와 직접 연락하는 감독이나 촬영감독이 쉬게 되면 스태프도 휴업 상태가 될 수밖에 없다.

안 씨는 “영화산업 밖에 있는 사람들은 감독과 배우 외의 스태프는 그저 ‘촬영현장 따라다니는 사람’ 취급을 한다”고 말했다. “후배 스태프가 두 달 동안 무급으로 일하고 배 한 상자 받았다더라”는 얘기를 듣고 ‘나는 그나마 나은 편인가’ 안도하는 자신이 안타깝기도 하다.

영화진흥위원회는 올해부터 영화에 제공한 지원금 25%를 무조건 스태프 임금으로 쓰도록 하는 스태프임금쿼터제를 마련했다. 스태프 없이는 단 한 편의 영화도 만들 수 없다는 현실을 뒤늦게나마 인식한 것이다. 미국 영화 현장을 배경으로 한 다큐멘터리 영화 ‘Who Needs Sleep?’(2006년)은 스태프의 수면 부족을 다뤘다. 한국 영화 스태프에게는 그들의 불평도 ‘배부른 소리’다.

손택균 문화부 soh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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