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인준 칼럼]‘南北의 숙명’ 현상유지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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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0년 4월 21일 20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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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대중 노무현 이명박 정부를 보더라도, 전(前) 정부를 탓하지 않는 현(現) 정부는 없는 것 같다. DJ는 전임 김영삼 정부가 텅 빈 달러곳간을 물려줬다고 거듭 강조했다. 자신이 YS 정부의 금융개혁, 노동개혁, 기업구조조정을 발목 잡아 외환위기를 부채질한 점은 반성하지 않았다.

10년 安保해이에 발목 잡힌 나라

노무현 대통령은 경제정책이 빗나갈 때마다 DJ 시절의 과도한 부양책 부작용을 탓했다. 자신이 경제를 이념화하고 시장경제를 고장낸 데 대한 성찰은 없었다.

요즘 MB 정부에서는, 공공연하게 말하진 않지만, DJ와 노무현 집권기에 군(軍)이 너무 망가졌다고 개탄하는 소리가 새나온다. 좌파정권 10년 사이 군대뿐 아니라 국가 전체의 안보체제와 의식이 심하게 이완된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현 정부가 안보기반 복원에 상당한 성과를 내지 못했다면 ‘책임의 대주주’가 될 수밖에 없다. ‘각계에 좌파의 뿌리가 너무 깊다’는 탄식이나 경제 살리기가 급해 안보 챙기기에 허점이 있었다는 변명은 안 통한다.

3·26 천안함 사태는 현 정부를 ‘비상 경제정부’에서 ‘비상 안보정부’로 바꾸다시피 했다. 그럴 수밖에 없도록 천안함 사태는 충격적이다. 한국의 1200t급 초계함이 두 동강 나기 불과 이틀 전 월터 샤프 주한미군사령관은 미 의회에 출석해 ‘지도부 교체 등 북한의 급변사태’ 가능성을 강조하고 있었다. 또 사건이 터진 3월 26일은 한미 연합야외기동연습인 독수리훈련을 하던 중이었다. 훈련은 실전에서 이기기 위해 하는 것인데, 미7함대 소속 이지스 구축함까지 투입된 훈련 와중에 ‘암수(暗數) 공격’ 한 방에 당했던 것이다. 그것도 민군(民軍)이 함께 살아가는 백령도 남쪽 대한민국 영해(領海)에서다. 이대로라면 북의 급변사태 이전에 남의 안보 급변사태가 또 생기지 말란 법이 없다.

‘천안함 이후’ MB 정부가 펼칠 안보정책은 2년 10개월 남은 임기 중은 물론이고 5년, 10년 뒤의 안보에까지 영향을 미칠 것이다. 과거 정권들의 5년, 10년, 15년, 20년 전 대북정책이 바로 오늘의 남북관계 상황에 파장과 명암을 드리우고 있는 것과 마찬가지다. 따라서 이 정부의 안보정책은 천안함 사태 수습 차원을 넘어 그야말로 국가와 민족의 먼 장래까지 통찰하고서 전개해야 한다. 안보정책에는 군사력 강화, 국민통합 및 안보의식 제고 같은 국내 측면과 대북정책, 대주변국 외교 같은 대외 측면이 망라되는 것은 물론이다.

천안함 사태 수습과정을 지켜보던 이종석 씨가 “문제의 본질은 정권의 무능력이다”라고 주장했다. 그는 지난 정부 때 노무현 대통령의 절대적 신임을 받으며 대북정책을 주물렀던 장본인이다. 현 정부와 군의 사태 수습 능력에 문제가 있다 하더라도 이 씨 자신은 노무현 정부가 남긴 안보 취약화 유산에 대해 먼저 반성해야 할 사람이다.

MB마저 단추 잘못 채우면 벼랑에


노무현 정부는 2004년 6월 12일 남북 장성급회담 실무접촉을 통해 ‘서해 북방한계선(NLL) 해상의 무력충돌 방지와 군사분계선 일대의 선전활동 중지 및 선전수단 제거’를 북측과 합의했다. 이런 합의를 주도한 사람이 당시 국가안전보장회의(NSC) 사무차장이던 이 씨였다.

이 합의 가운데 ‘NLL 해상 무력충돌 방지’는 한 달 뒤 북한 경비정 등산곶684호가 NLL을 침범해 우리 함정과 교전함으로써 깨졌다. 결국 우리 측이 압도적으로 유리했던 심리전만 중단하는 결과가 됐다. 당시의 합의 때문에 우리 병사들은 군사분계선 부근에 설치했던 ‘자유대한’ 팻말까지 뽑아야 했다. 우리 군의 대북심리전은 북이 가장 싫어하던 것이었다. ‘적이 가장 원하는 일을 우리가 하지 않는 것이 이기는 길’이라는 관점에서 노무현 정부는 어리석었거나 일방적으로 친북을 한 것이다. MB 정부는 부지불식간에라도 그런 어리석은 일을 해선 안 된다.

2000년 6·15선언과 2007년 10·4선언은 우리 헌법과 배치되는 북의 통일방안을 인정하고, 대한민국의 국가정체성을 훼손했다는 점에서 더 큰 문제를 남겼다. MB 정부가 원론 차원이라 할지라도 이 두 선언을 존중한다고 공식 표명하는 것은 심대한 문제를 안고 있다.

이명박 정부는 ‘천안함 이후’의 대북정책 단추를 과연 어떻게 잠글 것인가? 그 첫 단추부터가 참으로 중요하다. ‘역사적’이라고 할 만큼 중요하다. 그저 ‘스테이터스 쿼(Status Quo·현상유지)’를 꾀하며 상황을 미봉하려 한다면 끝까지 선수(先手)는 북에 주고 후수(後手) 두기에 허덕이는 형국이 될 것이다.

천안함 사태야말로 ‘남북 간의 현상유지란 숙명적으로 불가능하다’는 경험칙에 중대한 증거를 추가한 사건이다. 현상유지를 넘어서서 북한을 다룰 수 있는 역사의식, 통찰력, 지략이 대통령과 그 참모들에게 절실하다. 대북정책에서 더는 실패와 후회를 남기지 말아야 한다.

배인준 주필 injoo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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