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준규 검찰총장은 지난해 8월 취임사에서 “검찰을 보는 국민의 시선이 따뜻하지 않다. 검찰이 국민의 사랑과 지지를 받아야 한다”며 검찰 조직의 변화를 주문했다. 박연차 전 태광실업 회장에게서 일부 검사가 돈을 받은 것으로 드러난 데 이어 천성관 전 검찰총장 후보자가 ‘스폰서 검사’ 문제로 중도 낙마한 가운데 신임 검찰총장이 내놓은 변화의 다짐이었다.
경남지역 N건설 대표 정모 씨는 20일 MBC ‘PD수첩’과 2월 부산지검에 낸 진정서에서 1984년부터 지난해까지 25년간 100여 명의 전현직 검사에게 돈 봉투와 향응을 제공하고 성 접대를 했다고 주장했다. 정 씨가 기록해 뒀다는 검사 57명에 대한 접대 내용과 그가 건넨 수표의 일련번호는 검찰에서 당한 건설업자의 근거 없는 폭로로 몰아붙이기에는 너무 구체적이다. 모 검사장이 원정(遠征) 성매매에 동행했던 것처럼 말하는 정 씨에게 ‘동지적 관계’ ‘끈끈한 정’ 운운했던 통화 녹취록이 사실이라면 검사들이 얼굴을 들기 어려울 것이다.
그동안 일부 검사들 사이에선 ‘스폰서’를 갖는 것이 관행처럼 여겨졌다. 지역의 사업가나 재력가들이 검사들에게 각종 연고를 동원해 인연을 만든 뒤 ‘후원 관계’를 지속하는 경우가 적지 않았다. 세상엔 공짜가 없다. 결정적일 때 도움을 받으려는 투자라고 할 수 있다. 사건 처리를 맡고 있는 권력기관 인사가 물질적 후원을 받는 자체가 엄정수사를 가로막는 족쇄가 되고 포괄적 뇌물수수에 해당한다.
대검찰청은 민간인을 위원장으로 하고 3분의 2 이상을 외부인사로 하는 진상규명위원회를 꾸려 진상조사를 하겠다고 밝혔다. 2007년 김용철 변호사의 ‘떡값 검사’ 리스트로 불거진 삼성그룹 비자금 사건 때도 검찰은 박한철 당시 울산지검장을 본부장으로 특별감찰·수사본부를 구성했지만, 공정성 논란에 시달리다 ‘삼성특별검사팀’ 발족으로 활동을 접었다.
검찰은 땅에 떨어진 신뢰를 회복하기 위해서도 철저히 진상을 파헤치고 잘못된 관행을 근본적으로 단절할 방안을 내놓아야 한다. 김 검찰총장은 이번 기회에 ‘스폰서’들의 접근 루트로 이용될 수 있는 검찰의 각종 자문기구를 정리할 필요가 있다. ‘김준규 검찰’이 비장한 각오로 ‘스폰서 검사’ 풍토를 척결하지 않으면 타율적인 개혁의 칼을 피하기 어려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