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광장/이소연]4월의 두 얼굴

  • 동아일보
  • 입력 2010년 4월 23일 03시 00분


코멘트
‘4월은 가장 잔인한 달/죽은 땅에서 라일락을 키워내고/기억과 욕망을 뒤섞고/봄비로 잠든 뿌리를 뒤흔든다/겨울은 따뜻했었다/대지를 망각의 눈으로 덮어주고/마른 구근으로 가냘픈 목숨을 대어주었다’

잔인한 달 4월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은 대학생 시절 중간고사 기간이다. 지금은 모교의 중간고사 기간이 옮겨졌지만 그때는 벚꽃이 가장 예쁘게 피는 4월의 한 주가 중간고사 기간과 딱 맞아떨어졌다. 도서관에 박혀 있는 학생 입장에서 흐드러지게 피어 온 캠퍼스를 뒤덮은 벚꽃은 야속하고 잔인했다.

가끔 연못가를 걷다가 “나도 이곳에서 공부하는 학생이 아니라 저렇게 도시락 싸서 벚꽃이 가득 핀 캠퍼스로 소풍을 나온 가족이었으면 좋을 텐데…”라고 생각하며 가족이 돗자리를 깔고 김밥을 먹는 모습을 쳐다봤던 기억이 생생하다. 지금 생각하니 예전 대학생 시절 4월의 잔인함은 엄살이었던 것 같다. 좋은 환경에서 공부를 하면서도 감사함보다는 힘듦을 더 크게 느꼈고 아름다운 꽃이 여기저기 피었음에도 나가서 즐기지 못하는 아쉬움을 계절의 잔인함으로 혼돈했었던 것 같다.

올 4월엔 ‘4월은 가장 잔인한 달’이라는 토머스 스턴스 엘리엇의 시가 그때와는 완전히 다른 느낌으로 다가왔다. 3월에 지구를 흔들었던 아이티와 칠레의 지진이 우리에게도 일어난 것 같은 잔인함이었다. 어린 시절 할머니가 남은 다리가 부러져 깁스를 해도 죽지 않았으니 괜찮고, 나는 손톱 밑에 가시만 박혀도 죽을 듯이 아픈 법이라고 하셨던 적이 있다. 규모가 어느 정도냐, 인위적이냐 자연적이냐의 이유를 떠나 내 가까이에서 나와 함께했던, 마음만 먹으면 달려갈 수 있는 우리 땅 안에서 우리의 아빠 삼촌 형 오빠 동생을 잃은 슬픔은 정말 죽을 만큼 아팠다.

겨울 끝물같은 안타까운 사건들

2년 전 4월 8일 우주로 향한 로켓에 올라타기 위해 계단을 오르는 나를 본 많은 사람은 목숨을 잃을지 모르는 두려움을 느끼지 않았냐고 물었다. 나는 그저 내게 맡겨진 일을 하기 위해 우주에 가야 했고, 그곳으로 가기 위해서는 로켓에 올라야만 했기에 계단을 올라섰다. 출근길에 자동차를 타듯 그저 내가 가야 할 길이고 올라서야 할 곳이었다. 로켓이 발사되고 무사히 우주정거장에 도착한 뒤 임무를 마치고 귀환을 위해 캡슐에 올라탈 때도 같은 마음이었다. 큰 사고 없이 무사히 귀환할 수 있을지에 대한 두려움보다는 임무를 마쳤으니 돌아가기 위해 귀환 캡슐에 들어가 앉는 게 당연하다는 생각뿐이었다.

하지만 2년 전 4월 19일, 예측과 다른 경로로 수백 km 떨어진 곳에 착륙한 탓에 텔레비전 생중계를 지켜보던 수많은 사람은 우리의 생사를 알 수 없는 20여 분 동안 마음을 졸였다고 들었다. 우리 곁을 떠난 많은 해군 장병 역시 내가 로켓을 향한 계단을 오를 때와 비슷한 마음으로 두려움 없이 배에 올라탔을 것이라 생각된다. 이후를 예측할 수 없거니와 이제껏 했던 일이었고, 또 당연히 해야 하는 일이라 생각하고 여느 때처럼 승선했을 것이다.

그들은 돌아오지 못했다. 러시아에서의 생존 훈련, 지구로 향한 캡슐 안에서 예측과 다른 경로로 들어오게 된다는 사실을 알았을 때, 구조헬기를 기다리며 지친 몸으로 초원에 누워 있었을 때를 생각하니 이번 일은 남의 일이 될 수 없었다. 힘겨운 과정을 거치긴 했지만 나는 지금 무사히 이곳에서 숨 쉬는데 그들은 그렇지 못했다고 생각하니 미안한 마음도 들었다. 정말이지 나뿐 아니라 대한민국의 많은 분에게 이번 4월은 가장 잔인한 달이 되었다.

지난겨울은 유독 길었다. 4월이 되도록 눈이 내리는 곳이 있었다. 나도 얼마 전까지 겨울 외투를 입었다. 슬픈 지금 차마 꽃을 피울 수 없는 나무에 날씨가 핑곗거리를 만들어 주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추운 겨울은 4월까지 계속됐다. 그러나 조금 늦긴 했지만 어김없이 개나리가 노랗게 피어났다. 죽은 땅에서 라일락을 키워내기 위한 고통, 그것이 가장 잔인한 4월을 만들지만 자연은 힘든 고통을 이겨내고 겨울의 죽은 땅으로부터 수많은 생명력을 탄생시켰다.

굳은 땅을 뚫고, 또 봄은 온다

대한민국은 이제껏 수많은 잔인한 시간을 겪었다. 그때마다 고통을 이겨내고 무에서 유를 이루기를 반복했다. 그런 과정 속에서 우리는 더욱 강해졌고 그 어떤 어려움 속에서도 다시 일어설 수 있다는 희망을 가지게 됐다고 생각한다. 잔인한 4월을 어깨에 짊어진 수많은 장병의 희생이 봄의 생명력으로 싹트기를 간절히 바란다. 그래서 내년 봄에는 대한민국이 엘리엇의 황무지 대신 피천득 선생님의 ‘인연’을 떠올리기를….

‘민들레와 바이올렛이 피고/진달래 개나리가 피고/복숭아꽃, 살구꽃, 그리고 라일락 사향장미가 연달아 피는 봄/이러한 봄을 서른세 번이나 누린다는 것은/작은 축복은 아니다’

이소연 한국항공우주연구원 선임연구원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