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의 수도 베를린은 1945년 소련 미국 영국 프랑스군에 분할 점령됐다가 1948년 동서로 나누어졌다. 그 후 동독 주민의 탈출 행렬이 이어졌다. 250여만 명의 동독인이 자유를 찾아 서베를린으로 탈출하자, 동독은 1961년 8월 11일 밤 베를린 장벽을 쌓았다. 장벽을 따라 지뢰를 매설하고 곳곳에 초소도 만들었다. 그때부터 장벽을 넘어 탈출을 시도한 동독인들이 총격을 받거나 지뢰를 밟아 희생되는 일이 많았다.
▷동독에 접해 있는 서독 니더작센 주의 주(州)법무부는 연방정부와 다른 주정부의 협조를 받아 1961년 11월 24일 잘츠기터 시에 중앙법무기록소를 만들었다. 탈출에 성공한 동독인들이 당한 인권 탄압 사례를 6하 원칙에 따라 기록해 놓기 시작했다. 이 작업은 동방정책을 편 빌리 브란트 총리가 동독과 기본조약을 맺은 후에도 계속됐다. 동독은 독일의 일부이고, 인권은 주권을 넘어선 인류의 보편적 가치라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이 자료는 통일 후 일부 동독인에 대한 기소 근거로 활용됐고, 고용 신원조회 자료로도 쓰였다.
▷북한 김정일 집단이 정치범수용소에서 자행하는 인권 탄압을 당장엔 범죄로 처벌할 수 없지만 이들의 범죄 사실을 낱낱이 기록해 놓고 공소시효도 정지해 놓을 필요가 있다. 2005년부터 한나라당 의원들은 북한인권기록보존소를 설치하는 내용의 북한인권법안을 만들었다. 그런데 이명박 정부의 통일부가 북한과 협상하는 데 방해가 된다고 반대해 지난해 말 국회 외교통상통일위원회는 북한인권기록보존소 설치를 뺀 북한인권법안을 만들어 통과시켰다. 대신 통일부는 북한인권재단을 만들어 그 일을 맡기기로 했다. 관련 법안이 국회 법사위에 계류 중이지만 언제 통과될지 기약이 없다.
▷황장엽 전 노동당 비서를 암살하기 위해 공작원을 보낸 것도 테러행위이다. 1만7000명이 넘는 탈북자들은 대부분 북한에서 심각한 인권 탄압을 겪었다. 관련 증거와 기록을 차곡차곡 쌓아 놓는다면 북한 정권의 수괴와 하수인들도 신경이 쓰일 것이다. 지난날 김대중 정부는 서독의 동방정책을 모방해 햇볕정책을 만들면서 인권기록보존소는 쏙 뺐다. 북을 압박할 수단을 스스로 팽개친 것이다. 현 정부도 그 범주에서 벗어나지 못한다면 한심한 일이다.
댓글 0